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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Mar 20. 2024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그리움

어지러움과의 분투

나는 고소공포증이 없었다. 높은 곳을 좋아해 어딜 가든 젤 높은 곳으로 향했다. 전망대나 흔들 다리 등 그런 종류는 날 설레게 했다. 어릴 적 동네에서 말타기 리어카가 오면 엄마를 졸라 몇 번을 타고는 했었다. 내가 젤 높이 열심히 탔다. 그게 늘 부족한 느낌이라 꿈속에서도 타고 있는데 아저씨가 내려주는 걸 잊어 계속 타고 노는 신나는 꿈을 꾸고는 했다. (악몽일지도) 좀 커서는 봉봉(요즘 트렘펠린)을 타러 먼 동네까지 원정을 다니고는 했다. 내리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데도 노을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일 탈 생각에 설렜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그걸 타러 다녔다. 버스로 가야 할 거리를 걸어서 갔는데 시간이 다른 곳보다 길다는 이유로 제법 멀리 걸어갔다. 타고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을 못했다. 감사하게도 진짜 오래 태워줬던 것이다. 몇 번은 날아가 테두리 스프링 사이에 낀 적도 있고, 애들끼리 부딪혀 다치기도 했는데, 그게 뭐라고 그렇게 재밌었는지.  날은 저물어 있었다. 풀(국화) 빵을 들고 돌아오는데 겁이 덜컥 났다. 집에다 말을 안 하고 나와서 혼날 생각을 하니 머리가 다 서는 느낌이었다. 살금살금 기어 들어가는데 도사락통이 날아왔다. 다행히 벽에 명중했다. 맞았다면 어땠을까 안도하는데 엄마가 울면서 화를 내셨다. 지금에는 그게 엄마입장에서 얼마나 무서운 기억일지... 다 큰 딸이 날이 저물도록 안 들어왔으니. 그날 이후로 봉봉은 안녕이었다. 내가 손을 들고 벌을 서는데 아빠와 남동생이 풀빵을 싹 다 먹어치웠다. 그게 어찌나 그때는 서러웠던지.


놀이공원도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였다. 특히 놀이기구는 작은 소도시 애들에게 신세계였다. 처음 롯데월드에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서울은 할아버지 댁에 오는 방학에나 명절에나 올 수 있었다. 서울에 왔다고 서울 구경을 다닌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할아버지 댁에 있다 그대로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었기에 뭐 그게 섭섭하지는 않았다.


막내 남동생이 자라자 서울 구경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아빠가 우리를 데리고 롯데월드에 간 것이다. 지방출신들에게 그 시절 롯데월드는 어나더레벨이었다. 실내에 자리한 놀이공원이라니. 게다가 그 다양한 놀이기구들.  당시 빅 5를 끊어서 젤 빠르고 젤 무서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놀이기구를 탔는데 아빠가 어지러워 의자에 오래 앉아있었다. 남동생은 헬륨가스를 넣은 풍선이 터졌다는 사실에다 (그건 사는 게 아니었다) 아빠가 다른 기구를 타러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해져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여동생과 나는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건 당연한 것이다. 사람을 그렇게 흔들어 놓으면 어지러운 것이 당연한 거고 어린 우리와 달리 아빠에게는 더 많은 휴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 아빠를 답답하게 봤던 나를 뉘우쳐 본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딸애는 놀이 공원을 엄청 좋아했다. 서울랜드에서 우리 네 식구는 바이킹을 탔었는데 내린 후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내장이 앞으로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몰려왔다. 어지러움을 넘어 식은땀에 온몸이 젖었고, 숨이 과하게 쉬어졌다. 그대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애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도저히 다른 놀이기구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후 놀이기구는 내게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내 몸은 조금의 흔들림도 용납하지 않았다. 아침에 침대에서 내려설 때도 어지러우니.


다시 어려진다면 놀이공원에서 밤새도록 놀다 오고 싶다. 이제 그건 불가능한 꿈이다. 오늘 유독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리워지는 날이다.





고양이는 가족들을 불러 모으는 능력이 있었다.

이름을 짓는다는 명목하에 긴 토론이 시작되었고, 저마다 다양한 이름들을 제시했지만, 긴 토론이 무색하게도 내 맘대로 톰과 제리의 제리로 정해버렸다. 아이들은 그 이름이 좋지 않은지 지금도 제 각각의 명칭으로 부르고는 한다. 딸은 고양이, 아들은 먼지, 남편은 똘똘이라고 부르던데.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오는 영특한 녀석이다.


고양이는 어디를 가든 나를 따라다닌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발소리가 없어서 가끔 밟히고는 한다.  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지 알게 되었다. 이건 뭐 통 소리가 없으니 깜짝깜짝 놀란다. 내가 자신을 찾으며 집 전체를 찾고 다니는데 능청스럽게도 제리는 그런 내 뒤를 살금살금 따라다는 것이다. 아들은 그런 나와 제리를 보고 엄청 웃고는 한다. 하루에 몇 시간을 우리는 제리 이야기로 보내는데, 살면서 이렇게 많이 웃었던 날이 있었던가 싶다.  맨 위 사진은 사냥놀이에 몰두해서 흥분한 모습이다.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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