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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Mar 27. 2024

집사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

털 찐 제리

날이 추웠다 더웠다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 옷을 입어야 할지... 며칠 전부터 겨울 패딩들을 빨아서 장 깊숙이 숨기고 봄 옷을 전진배치 중이데 갑자기 추워져서  숨겨 둔 녀석 중 하나를 빼 입어야 했다. 그걸 걸치고 남편과 장보고 돌아오는데 땀을 거진  바가지 흘린 느낌이다. 좋은 계절은 짧아지고 덥고 추운 계절만 길어지는 슬픈 현실


급격한 온도 변화에  주변에 감기 환자도 넘쳐났다. 감기 전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재소환해 본다.


아들도 목이 부었다며 힘들어했다. 제리는 아들이 오면 아들 방으로 졸졸 따라가 근처에 있어 주는데 아들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살짝 즐기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아파서 그런지 털 때문에 목이 더 아픈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럴 리가 설마"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말 문이 턱 막혔다.

물론 그 때문에 악화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 영향이 없다고 장담할 순 없기에 묘한 맘이 되었다. 아들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섭섭했다. 제리와 아들은 격리체제에 돌입했다. 닫힌 아들 방 앞에서 제리는 운다.


제리는 빗질을 정말 싫어해서 삼일에 한 번 정도 빗었는데 요즘은 하루에 한 번 빗질을 했는데도 털을 뿜뿜 한다. 고양이는 1년에 두 번의 털갈이 시기가 있는데 봄에는 여름을 나기 위해 가는 털로 가을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두터운 털로 그래서 외모도 조금 바뀐다.


제리는 두 번의 겨울을 보냈는데 어릴 때는 변화가 작아 보였는데 1살이 되고 보낸 겨울에는 외모가 달라지는 걸 체감했다.

제리 애기 때


겨울에는 후덕해지는데 얼굴도 커지고 목도 두터워진다.  털 쪘다고 하는 시기다. 여름에는 얼굴도 얄상해지고 목도 가늘어져서 날씬해진다. 집사는 내 고양이의 여름이 돼야 살쪘는지 알게 된다. 이게 털 찐 게 아니라 살이구나.


털을 빗기면 골골 송(기분이 좋으면 내는 소리)으로 시작해 꼭 물리고 끝난다. 제리는 꼬리 쪽이나 배 쪽에 빗이 가면 물기 시작한다. 빗질을 하는 대로  털은 뭉쳐서 붕붕 뜨기 시작한다. 제리의 털은 흰색이 많아서 뭉치면  구스패딩에서 빠져나온 거위털처럼 붕붕 날기 시작한다. 우리 베란다에는 겨울이 아닌데도 눈이 내리는 기적. (올봄엔 진짜 오더라 눈)


무선 청소기에도 온통 제리 털이다. 가끔 털이 엉켜 멈추거나 털뭉치를 토하기도 한다  얘가 아주 고생이 많다. 하루 한번 이상은 청소를 해야 하고 검은 옷은 쉽지 않다. 애들 교복은 등교 전 무조건 찍찍이 행이다. (그래도 싫은 내색 없이 웃음으로 넘겨줘서 늘 고마워 )


그럼에도 제리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과 행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애초에 견주는 거 자체가 무의미하달까. 

우린 제리 얘기를 주고받으며 늘 웃는다. 사춘기와 갱년기로 제각각 흩어진 가족의 마음을 뭉쳐 주었다. 큰 소리를 무서워하는 녀석 때문에 화도 줄었다. 외출 후 중문에 기다리는 녀석을 보면 상상할 수 없는 반가움, 고달픈 하루에 활력소. 제리는 기쁨이자 사랑이다.


"아들 미안 우리에 환절기는 그렇게 길지 않아 "


말은 그래도 아들은 어젯밤에도 제리와 놀아주며

"얘 눈이 덜 무서운 호랑이 닮았어"라고 했다.


아침에 생생한 모습으로 등교하는 아들의 등이 보기와 달리 한없이 넓어 보인다.  

아들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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