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씁쓸한 디저트 이야기
2017년 봄, 매일같이 시장에 나가 장사하시던 할머니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떨어졌다.
폐가 딱딱하게 굳어 2년 내 사망할 것이라는 의사의 선고한 것이었다.
주변의 짧은 위로가 있었지만, 영원히 곁에 있으리라 믿었던 사람이 이제는 한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가족을 옥죄기 시작했고 내 속에 있던 세계는 점차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의기소침한 자식을 보며 안쓰러운 감정을 느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부모님은 방황하는 자식에게 잔소리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가족 문제, 지출 문제, 병원 문제 등 온갖 생각으로 힘들어할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묵혀왔던 감정이 말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내가 처음으로 부모님께 대든 순간이었다.
격한 다툼 후 혼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뒤에서 쉬익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괜찮니? 이 말미가 네 편을 들어줬어야 하는데, 늙어서 그러지 못해 미안하구나."
할머니는 다툼을 전부 지켜봤음에도 내게 어떠한 질책 하나 없이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었다.
그리곤 '그래도 가족은 서로 사랑한단다.' 란 말만 하셨다.
2019년 봄, 할머니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영면에 들 수 있도록 얼굴에 천을 씌우고 관을 덮는 절차가 있었기에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보러 가게 되었다.
모두가 흐느끼는 가운데 진행된 영면식은 우리 부모님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영면식이 진행되는 순간 내 가슴엔 비참함과 함께 성찰, 사랑 등의 감정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무정하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의 손은 천을 든 순간 떨고 있었다.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했던 목소리는 잠긴 상태로 떨리고 있었다.
슬픔을 참아가며 할머니께서 영면에 들 수 있도록 보내드리는 걸 본 순간이었다.
내 독서는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시작됐다. 그때 독서는 반성의 수단이자 나를 성찰하는 도구였다.
사랑의 의미를 너무 늦게 깨달은 바람에 할머니께서 편하게 잠들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사무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할머니의 사랑은 총량이 없었다는 것을.
사랑을 담은 디저트는 기억에 남아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 남은 여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할머니께서 내게 사랑을 담아 만들어주시던 디저트는 지금 나의 유일한 취미인 독서가 되어 지금의 나를 깨우치고 행복하게 만드는 할머니의 또 하나의 사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