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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람 Jul 22. 2024

상처

계속 비가 오더니 오늘은 해가 나왔다.

베란다 밖에 내놓은 고추가 궁금해서 나가보았다.

바람이 제법 불었던 것 같은데

쓰러지지 않고 잘 서있다.

고추도 떨어지지 않고 잘 달려있다.

모습에 반가워하며 물을 주려고 방충망을 열어보니 밤사이 홀로 바람과 치른 투쟁의 흔적들이 보였다.

방충망 가까이 있던 잎은 얼마나 방충망에 쓸렸는지

잎 끝이 까맣게 타버렸다.

그 옆에는 바람에 펄럭이다 갈라진 잎도 있었고 뒤집히고 꺾인 흔적 따라 갈색으로 변한 부분이 듬성듬성 보이는 잎도 있었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고 잘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지 찡했다.


'간밤에 버텨내느라 고생했구나.

잘 견뎌줘서 고맙구나.'


내내 비가 내리고 해를 보는 순간이 얼마 되지 않는데도 고추 모종은 잘 자랐다.

처음엔 가느다란 대 하나만 있고 줄기가 뻗지 않아 생육상태가 안 좋은 건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줄기도 내고 꽃도 피고

열매를 맺어 아삭아삭 풋고추를 생산해내고 있다.

병도 안 걸리고 해충도 없다.

베란다 안에서 키웠다면 아마 부족한 햇빛과 습한 날씨에 생육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베란다 밖에 있어서 햇빛도 바로 받고 바람도 맞고 신선한 공기를 쐬며 큰 덕에 튼실하다.

대신 거센 바람과 맞부딪히면서 잎이 상하고 꽃이 떨어지는 불운도 겪는다.

그래도 아직 남은 꽃들이 더 많고 매달린 열매가

 더 많다. 새로운 줄기도 뻗어가고 있다.

안전한 환경을 벗어나 자연과 가까이 있으면서 생채기도 나지만 그만큼 튼튼해진다.



힘든 일이 없었으면 한다.

기운이 떨어지고 신체기능이 젊을 때와 다르다.

웬만하면 해오던 방식이 익숙해서 다른 방식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

무언가를 새로 배우고 알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과거보다 많이 늘어났다.

그래서 빠름을 요구받을 때

무척이나 부침이 생겨난다.

.

.

.

.

그러나 그렇다고 새로움을 멀리 할 수는 없다.

살아있고 싶지 화석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다만 회복도 느리고 습득도 느리니

천천히 하는 것이  적절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힘이 들면 잠시 쉬기도 하고

아니다 싶으면 손실을 감수하고 돌아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다칠 수 있고

상처받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자 하는 길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잘 살아내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시절이 가져오는 변화일 테니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본마음을 찾아 잘 돌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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