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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람 Aug 18. 2024

입장차이 4

걱정 혹은 부담스러움

상황 1) 


"어디야? 전화해도 안 받더구먼"

"어, 친구 만나서 이야기 좀 하고 있어."

"연락해 주지 그랬어. 늦는다는 이야기 없었잖아."

"어... 내가 전화 안 했나?"

"안 했어. 마칠 시간 한참 지났는데 안 와서 전화하는 거고."

"그랬어? 전화했다고 생각했네. 미안."

"늦으면 연락 좀 줘. 걱정된다고."

"에이 걱정할게 뭐 있어. 내가 애도 아니고."

"애는 아니지. 그래도 사람이 올 시간에 안 오고 연락 없으면 신경이 쓰이잖아. 당신은 안 그래?"

"어, 별로? 뭐 밤새운 것도 아니고 일이 있나 보다 생각하면 되지. 편하게 생각해."

"신경이 안 쓰인다고?"

"다 큰 성인이 뭐 별일 있겠어. 볼일이 있거나 그런 거지. 어쩌다 연락 못하는 때도 있는 거고."

"내가 이러는 게 불편하다는 이야기야?"

"아니, 불편까지는 아닌데.  약간 뭘 이런 걸 가지고 싶은?"

"그러니까 내가 유난 떠는 거 같네."

"아니, 그런 말은 아니고 음.... 걱정 끼쳐서 미안하기는 한데 내 입장에서는 너무 늦은 시간도 아니고 알아서 들어갈 테니 그냥 신경을 덜 쓰면 좋겠다는 이야기야."

"내가 걱정하는 게 불편하다는 말인 거 같네."

"어... 음.... 약간?"



상황 2)

"이번에 바꾼 학원은 어떠니?"

"어, 뭐 괜찮은 거 같아요."

"수업 따라가는 건 괜찮아?"

"그럭저럭이요."

"저번 학원에서는 좀 힘들다고 했잖아. 여기는 너랑 잘 맞는 거 같아?"

"뭐 진도가 그렇게 빠르지는 않아서 할만한 거 같아요."

"잘 모르겠으면 보충 시간에 한 번 더 설명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해."

"그러고 있어요."

"진도 안 맞거나 하면 테스트 다시 봐 달라고 하고"

"알아서 하고 있어요."

"너 저번에도 알아서 한다고 하고선 진도 안 맞아서 고생만 하고 결과가 안 나왔잖아."

"그건 그때고 지금은 아니라니까요."

"아니, 네가 또 그냥 흘려버릴까 봐 걱정돼서 말하는 거야."

"하....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니, 너는 내가 이런 말도 못 하니? 왜 짜증 내고 그래?"

"알아서 한다는데 자꾸 이래라저래라 하시니까 그렇죠. 안 그래도 신경 쓸 거 많은데 그냥 알아서 할 테니까 좀 내버려 둬 주세요."

"너는, 정말. 어떻게 내버려 두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알아서 한다고요! 자꾸 이야기하시면 더 부담된다고요!"


상황 3)

"오랜만이네."

"어,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나야 잘 지내고 있지. 너는? 승진시험 준비한다더만 잘했어?"

"아, 그거? 이번엔 그냥 경험삼아 해보는 거라 대충 보고 있어."

"그래? 야, 나는 네가 공부한다 그래서 연락하고 싶은 거 꾹 참고 연락 안 했는데 그런 거면 말을 해주지 그랬어."

"어? 뭐가? 연락하고 싶으면 연락하면 되지. 내가 못 받을 상황이면 너한테 이야기할 거니까."

"아니, 난 네가 공부한다고 해서 혹시나 방해될까 봐 연락 안 했지. 나 때문에 집중 깨져서 공부 못하면 어떡해. 그럼 미안하잖아."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네가 걱정하냐고 너는 연락하고 싶으면 하고 내가 연락받을 상황이 아니면 통화 어렵다고 문자 보낼 텐데 너 혼자 걱정을 끌어안고 있었네."

"야, 너는 걱정해 준 거지. 섭섭하다야."

"그.... 걱정해 준 건 고마운데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돼. 섭섭했다니 그런 마음이 들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그냥 네가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서 그래."

"뭐. 그렇다면야... 정말 연락해도 돼?"

"연락은 해도 되고 내가 못 받으면 공부를 하거나 일이 있구나 하고 생각해 줘. 시간 될 때 답을 할 테니까."

"어, 알았어."




누군가를 걱정하게 된다는 것은 상대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마음이 곧 상대의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상호성을 키우고 친밀감을 늘려나가는데 유용하다.

 다만 개별 존재가 가지고 있는 모호한 경계를 지켜내지 못할 경우 

걱정은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상대에게 '부담'을 지우는 마음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걱정'은 친밀한 관계에서 상대를 '구속'하는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비록 말하는 당사자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무슨 말이냐면 당사자가 불안하니 상대를 움직여 자신이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상황으로 만들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A는 다소 민감한 기질로 불안이 높은 편이고 성장과정에서 늘 가족들과 함께 무언가를 행하고, 결정을 내리고, 어려움을 헤쳐 나왔다고 해보자. 반대로 B는 도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스릴을 즐기기도 하는 사람으로 성장과정에서 가족들과 사이는 좋았으나 각자 독립적이고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고 해보자. A와 B가 만났다. A는 B에게서 진취적이고 보다 자유로운 느낌을 받을 확률이 높고 B는 A에게서 섬세하고 사려 깊은 느낌을 받을 확률이 높다. 서로 자신에게는 없는 모습을 가진 상대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친밀감이 형성되면 걱정을 더 많이 하는 쪽이 걱정을 덜 하는 쪽을 '구속'하려는 시도가 무의식적으로 행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불안을 견디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고 안정감이 없어지는 일이기에 안정감을 유지하고자 애쓰게 되는 것이다. 이때 걱정을 덜 하는 쪽은 걱정이 많은 상대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입장에서는 평범한 상황일 뿐인데 상대는 그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만을 표현하게 될 테니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다 다르다. 정말로 다 다르다. 한집에서 자란 형제도 다르지 않은가? 쌍둥이도 다르다. 

다른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갖춰야 할 태도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상대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관계가 되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나와 다른 상대가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의 행동이나 태도를 바꾸고자 한다면 아마도 그건 사랑일 것이다. 내가 불편하고 불안하지만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 그런 마음을 잘 다스리고 상대에게 적절한 수준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또한 사랑일 것이다. 

  상대가 제공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기 전에 상대가 제공해주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제공해 주기 위해 상대가 기울이고 있는 노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를 지켜나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친밀하기에 상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고 무언가를 받고 싶어 진다. 그렇게 서로에게 공통분모가 생겨나고 공통분모가 커져 갈수록 가깝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단단한 연결감과 함께 충만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외로움이 희석되고 안정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독립된 개체이기도 하다. 공통분모가 커져 간다는 것은 독립된 개체로서 고유성이 줄어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율성이 줄어들고 의존적이 되거나 구속되는 느낌에 답답해질 수 있다. 그러니 친밀감과 독립성 사이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가까운 사이인데 걱정을 너무 안 한다면 믿음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비쳐서 상대가 서운할 수 있다. 반대로 너무 걱정해서 자신의 뜻대로 해주기만을 바란다면 집착 혹은 구속하려는 의도로 비쳐서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상대가 친밀감을 더 추구하는 사람인지 독립성을 더 추구하는 사람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대가 친밀감을 더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걱정은 관심과 애정이 될 것이다. 상대가 독립성을 더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걱정보다는 '네가 알아서 잘하리라 믿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내주는 것이 관계를 더 돈독히 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책임져줄수 없다. 우리가 책임지고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뿐이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늘 살펴보자. 상대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걱정이 상대의 독립성을 자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때로는 걱정을 하는 것보다 걱정을 안하는 것이 더 큰 사랑일 수 있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서정윤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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