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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자예쁜 Apr 05. 2024

실수인가, 건망증인가

  세상에 실수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뿐이다. 늦은 퇴근이지만 말끔히 정리하고 나오는 마음에 발걸음도 가볍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주차장에 차가 없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찾아도 차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두었을까. 분명히 아침에 차를 타고 왔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차를 가져갔냐고 물었다. “이 사람이 차를 어디에 두고 그런 말을 해. 아침에 당신이 타고 출근했잖아” 머리가 하얘지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재빨리 하루를 더듬어 보았다. 아침에 시장보고 다이소도 다녀왔다. 아차, 오전에 차를 타고 새로운 직원의 성범죄 경력 조회차 경찰서에 갔던 기억이 났다. 거기서 바로 그 서류를 받아 구청에 제출하고 생각 없이 그냥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며칠 전 지인 두 사람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우연히 건망증 얘기가 나왔고 치매 얘기까지 나왔다. 아침에 로션을 바르다가 로션을 발랐는지 안 발랐는지 기억이 안 나 다시 로션을 바른다는 이야기,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내 전화기가 어디 있지 하고 전화기를 찾는다는 이야기, 아이가 치약 칫솔을 가지고 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더란다. 어느 날 냉동실에 보니 들어 있다는 이야기,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웃을 수만도 없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결론은 정신 차리고 살 자였다.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일들이다. 

  이런 얘기를 나눈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 덜컥 겁이났다.

밤 9시 30분이 지나 차를 찾으러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가는 도중에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하고 찾아올지 난감했다. 별의별 생각에 가슴은 두 근 반 세 근 반 뛰었다.

  경찰서 주차장에 아무도 없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입구에서부터 경찰 아저씨가 “어떻게 오셨어요”하고 묻는다. “아저씨 제가요. 오늘 낮에 성범죄 경력 조회하러 왔다가 깜빡 잊고 차를 두고 갔어요”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아줌마,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왜 해요. 차를 여기다 두고 다른 볼일 보고 오는 것은 안 됩니다. 다음부턴 절대 그러지 마세요.” 

  너무나 부끄럽고 속상하여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차를 몰고 나오면서 창문을 열고 말했다. “아저씨 죄송해요. 그런데 저 거짓말은 아니에요.” 나를 바라보는 아저씨는 ‘참 별사람이 다 있구나’ 하는 표정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차를 가지고 오는 내내 마음이 상했다. 경찰 아저씨의 말이 속상한 게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너무 어이없어 웃음까지 나온 것이다. 

  이렇게 매일의 일상에서 조그마한 실수나 건망증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나 남이라면 쉽게 이해될 부분이지만 자신이기에 더 용서가 안 되는 것이었다.

  늦은 시간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본다. 아들도 “엄마, 차 찾았어요” 한마디 한다. 내가 생각해도 무엇에 홀린 듯한 일을 겪은 뒤라 뭐라고 변명할 수도 없고 마음만 혼자 서글프다. 이럴 때 누구라도 ‘그럴 수 있어 괜찮아’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놓치는 가족이 야속하다. 모두가 자기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며 사는 것 같다.

  이렇게 겪은 일 하나가 나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험은 소중한 것이다. 현재 내 상태를 확인하고, 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또래의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무서운 병이 치매라고 늘 이야기한다. 백번의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중요하다. 정기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 그리고 두뇌를 자극하는 활동이 필수인것을 생각하며 노력할 일이다. 

  시간이 지나고 조용히 더듬어 보았다. 그렇게 까맣게 망각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것이 바로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 바쁜 일상에서 종종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실수들이 삶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실수가 잦으면 안 되는 것이다. 돌아보니 작은 일이었지만, 나에게 중요한 교훈과 큰 알림을 주었다. 

  이제 자주 멈춰서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피고, 현실을 더 깊게 인식하고자 한다. 바쁜 일상에 묻혀있지 않고, 현재를 즐기며 소중한 순간들을 기억하고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 학기를 맞아 새로 온 직원의 성범죄 경력 조회를 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다. 지난 일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똑같은 실수를 하는 건 조심해야 하지만 한 번의 실수는 그래도 추억으로 남는다. 의식적으로라도 마음을 늦춰 가슴을 펴고 호흡을 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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