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밤 10시
미뤄놓은 일들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시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를 준비하는 시간.
포근한 이불에 누워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나름 괜찮은 하루였다고 다독이며 내일을 기대하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 10시.
누군가에게는 평온한 이 시간에 아들에게는 종종 혼란과 좌절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아, 리코더 연습 해야 하는데, 수행평가 어떻게 보지?"
"내일 태블릿으로 글쓰기 해야 했는데 난 자판 치는 속도가 너무 느려. 반도 못쓸 것 같아."
"영어숙제도 안 했다."
"벌써 10시인데, 망했다. 나 어떡하지?"
"잠도 못 자고 이게 뭐야."
"학교 가기 싫어."
뭘까? 오후 내내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놀다가 갑자기 해야 할 일이 떠오르는 건?
진작 말했으면 리코더 연습도, 자판 치는 연습도 충분히 해봤을 텐데, 영어숙제도 졸리기 전에 미리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꼭 이 시간에만 해야 할 일이 생각나는 걸까?
어차피 못할 거 차라리 기억이라도 안 나면 적어도 오늘 밤은 편히 잘 수 있을 텐데.
내일 학교 가서 죄송합니다 말하면 안 될까?
이 밤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너에게 그냥 자라는 말도, 지금 하자는 말도 들리지 않는다.
밤마다 찾아오는 혼란스러운 시간이 가끔 무섭고 안타깝다.
너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네 머릿속에 들어가 차곡차곡해야 할 일을 정리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밤마다 힘들어하는 너를 가만히 보고 있어야 하는 내 맘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답답하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모른 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