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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곰 Apr 16. 2024

친정엄마와 함께하는 밤

하늘의 별들을 헤아릴 수 있는가? 엄마의 마음도 그와 같으리.

우리 엄마는 에너지가 넘치신다.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촘촘한 스케줄을 가뿐히 해내시는 워우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셔서 작은 동네에서 수업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리면 먼저 달려가셔서 배우곤 하신다. 수업만 듣고 안 써먹으면 잊어버린다고 압화, 동화구연 자격증 과정을 준비하시기도 하고, 오카리나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같이 연습하고 공연도 하신다. 성당에서도 여러 일들을 맡아서 꾸준히 봉사하시며 틈틈이 집안일에 마당에 텃밭까지 가꾸신다.


나랑 동생이 독립해서 나와 살면서부터 하나씩 늘어난 엄마의 스케줄이 10년이 넘어가자 엄청나게 많아졌다.

항상 스케줄이 꽉 차있었기에 가끔 친정집에 방문하려면 사전에 꼭 엄마의 일정을 확인하 가야 했다.


바쁘신 와중에도 친정집에 방문하면 손주들 데리고 산으로 바다로 나가서 자연을 맘껏 느끼게 해 주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 애들은 잔소리하는 엄마보다 할머니랑 노는 게 제일 좋다고 한다.


그런데 작년부터 엄마가 자주 감기에 걸리셨다. 독한 감기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떨어지지가 않았다. 가끔 집에 전화드리면 코가 잔뜩 막힌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신다. 처음엔 감기가 자주 걸리시더니 갈수록 면역력이 떨어지시면서 고지혈증에 고혈압, 류마티스 관절염 등 자꾸만 병명이 늘어만 간다.


그래도 체력으로 버티던 엄마였다. 아파도 집에만 있으면 기운 떨어진다고 나가서 걷고 친구들도 만나고 수업도 받으면서 씩씩하게 생활하셨다. 역시 우리 엄마는 밖에 있을 때 에너지가 넘치시는구나 싶어서 내심 마음을 놓았다.


"딸, 나 내일 서울 간다."


"갑자기? 무슨 일 있으셔요?"


"요즘 입맛이 통 없어. 살이 3킬로나 빠졌어. 손발도 저릿저릿하고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너무 쓰다. 왜 이러는 건지 몰랐는데 주변에서 들어보니 류마티스 관절염 때문이래. 최근에 아는 사람 한분이 아프고 2달 만에 돌아가셨는데 그분도 류마티스 였대."


한참 전화를 하면서 엄마가 많이 걱정되고 불안해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랑 동생이 병원 좀 가보라고 할 때도, 음식 잘 챙겨서 드시라고 할 때도 괜찮다고 하셨던 분이 지인의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놀라신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 혼자 유명하다는 의사도 찾아보고 멀리 서울병원까지 찾아서 오신다는 것.


가까이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끔 전화나 드리면서 엄마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죄송했다. 그래도 내가 서울에서 일하는데, 나한테 부탁을 하시지. 그럼 같이 의사도 병원도 알아보셨을 텐데. 딸에게 부탁하는 것도 미안하셨던 건지, 아니면 부담주기 싫으셨던 건지.


그렇게 갑자기 엄마가 서울에 올라오셨다.

병원예약시간이 오후라서 오늘은 올라온김에 검사도 받고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신다고 하셨다. 문제는 병원이 우리 집에서 정반대방향. 지하철 타고 한 시간 반이나 이동해야 한다. 


"딸 너네 집 가는 게 기차 타고 내려가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애들 키우면서 살 땐 괜찮은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드신 부모님껜 아니었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병원진료보기 편한 곳은 대부분 강남 주변. 역시 사람들이 강남, 강남 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방에 계신 엄마 친구분들도 아산병원, 서울삼성병원에 많이 다니신다고 하시는 걸 보니 강남이 점점 더 좋아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저녁에 만난 엄마의 얼굴은 수척해 보였다. 살이 빠지셔서 그런지 엄마가 더 작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엄마일 거라 생각했는데 생기 없는 모습을 보니 너무 속상하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인가? 건강하게 나이들 수는 없는 것인가? 올해 들어 몸이 자꾸 아프니 마음도 아프셨다는 엄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왠지 친구들 만나기도 싫어서 밥 먹으러 나오라는 전화도 피하셨다고. 마음이 우울하니 몸이 아픈 것보다 힘드셨다는 말에 속이 아렸다. 


내가 힘들 땐 엄마에게 전화해서 얄미운 사람 흉도 보고, 속상한 일 털어놓기도 하면서 마음을 풀곤 했는데, 엄마는 힘들 때 누구랑 이야기하셨을까? 친구도 만나기 싫었으면 아빠랑은 이야기해보셨을까? 자식들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으셨던 건 아닐까? 


"한동안 우울했는데, 서울 와서 진료도 보고 손주들 얼굴도 보니까 좀 낫다. 병원 올 때마다 얼굴 보고 가면 좋겠지만, 너무 멀다. 다음 진료부터는 오전에 보고 오후에는 바로 내려갈게."


"할머니 많이 보고 싶은데. 할머니 자주 놀러 오세요."


바로 내려가신다는 이야기에 서운해하는 아이들. 나도 우리 엄마 자주 보고 싶은데, 서운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마디마디 툭 튀어나온 엄마의 손가락을 쓰다듬어 본다. 푸석푸석하지만 여전히 따뜻한 엄마의 손.


"엄마 5월엔 저희가 내려갈게요. 다음에 병원 오실 땐 제가 엄마 보러 병원 근처로 갈게요."


"뭘 그래~ 출근하는 날 멀리까지 못 오지. 그냥 나 혼자 조용히 왔다 갈게."


"엄마, 더 아프시기 전에 내가 빨리 강남으로 이사 가야겠다. 병원 가까운 데로 집 알아볼게."


"애들 먼저 키워놓고 이야기해. 이사 가면 애들 고생한다."


아픈 본인보다 고생할 딸이랑 손주부터 챙기시는 엄마. 나도 엄마지만, 우리 엄마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아픈 엄마를 만나서 속상했지만 오랜만에 엄마랑 손잡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엄마의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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