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아빠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고, 49제를 지내는 마지막 날에 스님에게 들은 한마디.
"지윤아, 이별을 무서워하지 말아라."
내 마음속에 들어오셨다가 가신 것처럼 담담히 한 문장의 말씀으로 위로를 해주시는 스님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저릿하며, 쿵 하고 내려앉았다. 20대 후반 어리다면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지만 아빠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기엔 어린 나이였다. 아빠와 나란히 걸어갈 때면 누가 봐도 "김종범이 딸이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닮았던 우리, 하지만 아빠와 나의 거리는 그에 비해 멀기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아빠와의 헤어짐을 잘 이겨내길 바라는 스님의 마음이 담긴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스치는 날이 여럿 있다.
K장녀지만 나에게도 아빠의 빈자리는 컸고, 밀려오는 공허함과 두려움에 스스로의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엄마가 있어서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꽤 오랜 시간 어두운 밤에 기대어 울었다. 하지만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와야 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K장녀의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기도 했고, 나의 괜찮음이 엄마에게 닿아 엄마도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멍해지는 시간이 늘어났고, 알 수 없는 우울함과 짜증이 밀려왔다. 그때의 내 감정을 다시 꺼내어 보면, '공허함'과 '두려움'이 뒤엉켜 나에게 짜증과 분노를 낳게 한 거 같다. 그 당시에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도 따뜻한 위로도 공감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감정들이 버거웠던 탓이었는지, 스스로를 내면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결국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게 되었다. 그마저도 인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매일을 소화불량에 시달렸고, 술과 약이 없으면 잠을 청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에겐 매 순간 걱정을 하게 만드는 주요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아파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를 원망하고 원망했다.
감정을 느끼고 소화해야 비로소 감정은 사그라든다.
그때의 나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별을 무서워했던 것이 아니라 '그리움'이 무서웠다는 사실, 그리고 이별한 후에는 충분히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됐다. 사람과의 인연은 소중한 것이지만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 이별을 맞이한다. 그 순간에 떠오르는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어루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꼭 이별만이 아니라 사람은 감정을 느끼고 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지난 시간을 통해 몸소 느꼈다. 1년 365일 행복할 수 없고, 하루에도 수십 번 기분과 감정은 바뀌기에 순간순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로 인해 감정은 우리에게 머물지 않고 지나치고 사그라들기 때문이다. 그 능력이 향상되고 잘 소화할수록 우리는 더욱 큰 마음의 그릇과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깊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지난 7년의 시간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하나씩 글을 써보고 싶었다. 브런치라는 공간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닿길 바라며 오늘 나는 첫 발걸음이 담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