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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신규 유치원 특수교사의 생존기

생존기를 살아낸 교사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리고 미숙했던 신규 교사 시절의 내가 있었다. 첫 사회생활을 교직에서 시작하게 된 나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정확하게는 나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감이 너무 무겁고, 실수할까 봐 두려웠다. 지금부터 사회 초년생인 내가 유치원 특수교사로 근무하면서 어려움들을 극복했던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한다.


  첫째, 학부모

  대체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부모들을 잘 상담해야 하고, 신규답지 않은 전문성을 보여야 한다. 굳이 먼저 신규임을 밝히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다 학기 초 행사에서 전체적으로 공개를 해주시는 바람에... 곤란해지기도 했다. 학부모님들이 신규 교사라고 하면 불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또 각종 교육 및 서비스 지원을 하려면 꼼꼼히 체크하여서 한 개도 놓치지 않고 신청해야 한다. 실수하여 놓쳤을 때, 우리 반 아이만 해당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며 일을 처리했다. 


  내가 자식을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는 아이들이 너무나 소중했고 많이 사랑했다. 물론 지금도 사랑한다. 거기에 신규 교사의 불타는 열정으로 온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했으나 진심이 와닿지 않을 때는 나도 풀이 꺾이고 상처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부모님들을 지지해 주는 단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둘째, 업무

  유치원 밖에서 들었던 교사는 이른 퇴근과 방학이 있는 좋은 직업이라고 했다. 직접 유치원으로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어려운 점도 많았다. 특수교사는 대체로 유치원 내 소수이다. 규모가 있는 유치원은 2~3학급이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1학급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신규 시절 특수교사가 1명만 있는 곳에 근무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 '장애'와 관련된 대부분의 일들을 혼자 처리해야 했다.


  지금도 돌아보면 마음이 짠하다.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아무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다. 주경야독을 여기서 할 줄이야. 밤에는 공문과 지침을 공부하고, 근무시간에는 특수교육지원센터와 교육청에 전화해서 문의하고 업무를 간신히 처리했다. 그 와중에 수업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수업 준비도 해야 했다. 처리하지 못하면 퇴근 후 밤에 업무처리를 했다. 

  누군가 왜 그렇게까지 했느냐 묻는다면.. 이유는 하나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하지 않는 일이라서. 열정으로 주경야독을 한 탓에 업무는 어느 정도 익힐 수 있었다. 다만... 업무량이 정말 정말 많다. 지금은 조금 숙달되었지만 그래도 너무 많아 버겁다.


  셋째, 교육

  이론과 실전이 다르다지만 정말 아이마다 제각각 다 달랐다. '무지개, 스펙트럼이라 표현하면 적절할까?' 어찌 이리 다를 수 있는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는 내가, 책으로만 열심히 공부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업무 처리처럼 노력하는 것이었다. 


  아이에 대한 전문가는 부모이다. 그래서 없는 업무 시간을 쪼개어 부모 상담을 늘 했다. 늘 해야 하는 일처럼 생각하며 했다. 오죽하면 한 학기에 1번 하는 개별화 교육 협의회에 더 이상 의견을 낼 것이 없다고 하던 부모님도 계셨다. 나와의 소통이 충분하다는 뜻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나의 교육 방법과 아이의 반응을 잘 전하고, 가정에서 이야기를 잘 듣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도 조금씩 성장하며 무사히 졸업했다.



  혹독했던 신규 교사 시절을 보냈다. 이제 나는 복잡한 일들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멀티가 가능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매번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하며 진행했던 부모 상담도 능숙하게 진행할 수 있는 대범함이 생겼다. 


  그제야 느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도 성큼 성장했구나. 왠지 진짜 선생님이 된 듯한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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