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본능
2025년 7월 셋방살이가 시작되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다.
그 흔한 이브자리, 세간살이 없이 물컵만 덩그러니 놓인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컴퓨터 화면만 이 여름 강렬한 더위를 흡수하며 자신의 역할을 할 때 벽에 달라붙은 선풍기만 그 더위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래 너도 세 들어왔구나. 조용히 선풍기에 말을 건넸다. 어둡게 내려진 커튼 사이로 틈틈이 바깥세상에 빛을 느낄 수 있는 창문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자신의 신상 명세를 기록하며 들어온 방, 허락이 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아니 더 걸렸다. 내가 잊고 있어서 모를 뿐 그렇게 정식 셋 방에 들어왔다. 모르는 이들도 빈번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어 빛을 보기를 기다리는 발자국 소리가 손끝에서 울려 퍼진다. 아직 나는 발소리를 죽이지 못한 초보의 미숙함이 드러난다. 왜냐고 이곳에 아는 게 없어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며 미로를 찾아가는 꼬무리다.
셋 방은 누구의 허락인지 모르지만 태어나자마자 셋방에 있었다. 다달이 같은 날이 되면 주인에게 그달동안 살은 비용을 냈다. 없으면 한 달을 봐달라고 부탁하고 그도 안되면 더 낮은 방을 골라 이사를 한다. 부모라는 존재가 있어도 주인 아들은 내게 주인이었다. 내가 져주어야 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르침 없이도 알았다.
한 번은 주인아들이 내게 자꾸 가게에서 물건을 훔쳐오는 일을 시켰다. 여러 번 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러다 그날은 난 냇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가게에 물건이 털렸다고 한다. 냇가에서 놀고 있는 날 잡으러 온 가게 주인은 그날 도둑맞은 물건을 내놓라고 하였다. 난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주인 아들이 내가 했다고 하는 바람에 내 말은 들어 먹히질 않았다. 아버지께 혼나고 밖에 나와 있는데 주인 아들이 "네가 했다고"하라고 말했다. 안 그럼, 너 우리 집에서 못살게 할 거라고 협박을 했다. 큰소리 내며 싸우자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난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친구들이 주인아들 부하이라고 놀려도 참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주변에 짱돌을 찾아 손에 쥐었다.
그놈이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었다. 난 달려가 주인 아들을 머리로 받아버렸다. 주변에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이 나를 공격하듯 덤벼들었다. 저들도 다 주인아들이 편이었구나! 같은 셋방살이 친구들인데 억울함에 참아왔던 셋방살이 울음이 터졌다. 들고 있던 짱돌은 써보지도 못하고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머리에 받친 주인 아들은 코에 부딪혔는지 코피가 나고 있었다. 순간 붉은 피를 보니 '아 이겼구나!' 생각이 들었을 때 부모님은 더욱더 작은 셋방으로 이사 갔다. 이후 더욱더 허리를 굽히는 법을 알았다. 셋방은 나 자신을 낮추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 더욱더 낮아지고 낮아져 더 이상 낮출 곳이 없으면 일어서게 된다. 그건 살아남기 위한 진리였다. 인간은 낮은 곳에서 인간의 본능이 살아난다. 그것이 내 나이 11살이었다.
돈은 인간의 본능을 일깨워주는 큰 역할을 한다. 주인 아들보다 더 잔인한 방법으로 탈바꿈할 수 있음을 터득해 간다. 난 셋방의 의미를 11살에 알았다. 부모의 무능은 가난을 부르며 가난은 자식의 인성을 바꾼다. 어떻게? 이렇게 좋게 시간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벌도록 한다. 그러나 지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열심히 벌면 열심히 그보다 더 많이 썼다.
어릴 적 기억이 나의 슬픔을 잡아먹고 있었다. 슬픔은 바나나가 물러지는 순간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물러버려 껍질에 손도 대기 싫도록 슬픔이 깊이 다가왔다. 주인집 아들은 순탄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고, 난 여전히 셋방을 전전하며 다 저 주인집 아들 때문이라고 원망하며 죽일 듯 달려들려고 번들거렸다. 그럴수록 이 바나나의 검 버섯처럼 빠르게 그와 나의 사이게 거리를 멀어지게 했다. 다가설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성인이 된 후 노년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칠순을 넘겼다. 여전히 그의 셋방에 들어 계약서를 썼다. 아무것도 없이 컴퓨터 불빛에 의지 한채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판만 두드렸다. 내게 마지막 남은 직업이라 여기며 브런치 작가가 되어 내 인생에 마지막 셋방 탈출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