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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Jun 25. 2024

믿고자 하는 의지

노시보말고 플라시보

마트에 갔다.

할머니는 사탕을 고르고 있던 손자에게 굳이 블루베리 사탕을 골라준다.

"이거 먹어. 이거 먹으면 눈 좋아져."

지나가던 내가 피식 웃는다.

'블루베리 성분이 들어있기는 할까?'


단 것이 피부에 안 좋다고 맹신하는 중국 언니가 있다.

자기는 피부 빼곤 내보일 게 없다며 단거라면 치를 떤다.

단 게 있을 때마다 처음 하는 말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단건 피부에 안 좋아."


플라시보. 들어본 적 있을 거다. 위약 효과.

그럼 노시보는?


노시보(영어: nocebo)는 의학에서 환자에게 실제로는 무해하지만 해롭다는 믿음 때문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물질을 가리킨다.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는 어떤 것이 해롭다는 암시나 믿음이 약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말한다. <출처: 위키백과>


쉽게 말해, 내가 믿는 것이 나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

플라시보의 반대 방향으로도 이야기는 전개될 수 있다.


아빠와 나는 체질이 너무 비슷했다.

아빠는 오래전부터 한의학 사상체질 책을 탐독하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너는 태음인, 너는 소양인' 구분 짓기를 좋아하셨다. 그 책대로라면 우리 부녀는 전형적인 소음인이었다.

"소음인은 찬 거 먹으면 안 돼. 과일도 따뜻한 색깔의 과일이 성질도 따뜻해. 수박은 차서 안 좋아."

이상하게 후로 수박을 먹으면 몸이 추운 같고 콧물이라도 한 번 나오면 찬 거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이라 확신하고 진단을 내린다.


요즘 <Human Kind>라는 책을 듣는다.

저자는 man라고 쓰려다 여성을 포함하는 human이라는 단어를 택했다. 그리고 kind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친절하다'는 의미이다. 제목에 관해 오랜 시간 고민한 흔적이 보였고, 이 책의 메시지를 포괄하는 최고의 제목이 되었다. 인간은 친절하다.


저자는 인간 본성 중 선함에 집중한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인간본성이 이기적이라는 교리는 서구의 보편화된 전통(기독교)으로 칼뱅, 마키아벨리, 프로이트 등의 많은 사상가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 사상을 접한이들은 인간 본성의 악함을 쉽게 인정하고, 뉴스에 나오는 이슈들을 지켜보며 '말세'라느니, '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며 한탄과 푸념을 일삼는다. 나 또한 오랜 기간 우리 후손이 살아갈 미래 사회에 대해 비관하기도 했다.


저자는 우리가 뉴스를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뉴스를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이성적이지 않다. 뉴스는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를 악하다고 인정하게 하는 확신이 된다.

늘상 우려하는 비인간성, 탈사회화에 관한 문제들은 사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것보다 정도가 덜 하다. 많은 부분이 미디어로 부풀려있기에 빈번한 미디어 접촉으로 인해 우리는 그것이 일반적이라고 오해하고 믿음으로써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길을 잃게 된다.


'리얼리티 쇼' 시청을 지양해야 한다. 제작자들은 출연자들에게 갈등의 상황을 연출하게 하고, 시청자들은 그것이 실제라 믿고 흥미롭게 지켜본다. 훗날 출연자들의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악마의 편집'에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를 왜곡하는 이들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어린 친구들에게는 공격성, 사회 부적응 등의 성향이 증가한다. 현실이 그렇다고 믿으니 미래도 그럴 것이라 믿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희망을 본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선한 존재라는 믿음은 인간적인 사회, 이타적인 사회, 모두를 포용하는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 생각은 비로소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시보말고 플라시보다.

지금 믿는 것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


믿는 대로 된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의 진료 시간이 참으로 짧다고 느꼈다.

이제야 알았다. 

의사가 약의 효능과 각종 부작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수록 환자는 아픈 병이 많아지는 것을.

오늘 검진 차 들른 병원에서 최근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하는 내게 의사는 

'심리적인 겁니다.' 한다.

그 한마디 듣고 나니 희한하게도 증상이 없어졌다. 참으로 명약이다.



p.s. 그렇다면... 오늘은 야식과 빵을 실컷 먹으며 '0칼로리'라고 믿어볼까!






글, 사진 엄민정

상하이 거주 13년.

한국의 김치와 상하이의 샤오롱바오처럼 익숙한 것들을 다시금 들여다보며 의미를 찾는 일에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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