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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Jun 27. 2024

익숙한 이방인

시간은 계속 흐르니까

남의 묫동*위에서 미끄럼깨나 탔다.

새끼 강아지 좀 보자고 어미개에게 여린 다리를 내줬다.

수확 끝난 남의 밭에 쪼그리고 앉아 작고 못난 고구마를 주웠다.

들판에 흐드러진 냉이를 캐며 지는 해를 보았다.

제멋대로 자른 머리를 참을 수 없어 자전거로 읍내에 나가 다듬었다.

동산에 올라 꼬챙이로 참개구리를 잡아 후라이팬에 튀겨 먹었다.

서울에서 귀한 손님 오시면 엄마는 토끼와 오리를 잡았다.


이곳은 <나의 살던 고향>이다.

해보다 일찍 뜨는 곳

돌아온 나의 고향은 논 푸르고 흙 붉은 곳이다. 그간 잊었던 정취에 오감이 바쁘게 반응한다.

새벽 5시의 집 앞엔 이미 농사일이 한창. 흙을 곱게 갈아 놓은 밭에 새벽부터 들깨모종을 심던 아낙이 스스럼없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린다. 누군가 주고 간 아이스커피 같은데 써서 못 마시겠다는 눈치다. 냉큼 가져다준 설탕 두어 스푼에 아낙 얼굴의 깊은 골이 잠시나마 활짝 펴진다. 커피와 설탕의 우왁스런 힘으로 모종은 어느새 밭을 가득 덮는다. 


대부분의 농사일은 오전 중에 끝이 난다. 

점심을 먹고 한숨 돌리는 시간. 대낮이 절간*같이 조용하다.

어린아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보기도, 듣기도 힘들어졌다. 

텅 빈 유모차는 어르신들의 보행기 신세가 되었다. 


딸아이를 데리고 근처 공립학교에 가서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산뜻한 보라색 원피스의 여자 교장 선생님이 있었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딸아이가 한국 친구를 좀 사귀었으면 하는 지극히 개인적 바람으로 청강을 부탁해 보았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 폭력, 왕따, 교권 상실 등을 이유로 학교가 많이 위축되어 있다며 교육의 현주소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이 길었다. 우리 때 학교가 아니라고 했다. 한숨이 늘어나는 교장의 자리가 무겁게 보였다. 생각해 보고 연락을 주기로 한 어제오늘의 시간이 평생처럼 길다.


마을 한 바퀴를 크게 돌았다.

허름한 채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던 기차역이 새 단장을 시작했다. 

쌈짓돈이 오래간만에 세상 구경을 하는 읍내 5일장은 이제 시끌하지도 벅적하지도 않았다.

장날마다 공터에 천막을 치고 짜장과 가락국수를 팔던 가족은 옆마을에 건물을 지어 식당주가 되었다.

넓디넓은 논은 수익 좋은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어 번쩍번쩍 광내는 발전소가 되어 있었다.



삶이 주는 희로애락을 맛보느라 하루하루가 분주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나도 흘렀다. 부모님의 시간은 두 배로 빠르게 흘렀다.

거미줄로 꽁꽁 묶인 녹슨 자전거와 헐렁해진 경첩을 힘겹게 달고 있는 바깥문.

고향집에도 시간은 다녀갔다.


한 곳도 빠뜨리는 일 없이 시간이 계속 다녀가고 있다.


그 사이, 소축사의 황소와 닭장의 수탉은 이 낯선이가 낯설다. 


"댁은 누구쇼?"


   


    

* 묫동: '무덤'의 전라도 방언

* 절간: '절'을 의미하는 다른 말






글, 사진 엄민정

상하이 거주 13년.

한국의 김치와 상하이의 샤오롱바오처럼 익숙한 것들을 다시금 들여다보며 의미를 찾는 일에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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