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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Nov 15. 2024

매우 사적인 후각에 관하여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안개인지 연기인지 모를 그 뿌연 것의 향기는 할머니 댁으로 가는 길까지 나를 안내했다. 농촌 전체를 희뿌옇게 감싸고 있는 이 냄새는 여느 집 밥 짓는 냄새 같기도, 다 타버린 재에서 맡아본 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히 무슨 냄새인지는 알 수 없는 그런 냄새였다. 구수하여 아득해지는 냄새 속에서 내 어린 손을 잡고 머리에 짐을 이고 버스에서 내린 엄마는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산속에 있던 할머니 댁은 내가 버스를 타고 온 시간만큼 또 걸어야 도착할 수 있었다. 내 작은 걸음으론 그랬다. 


길 초입에는 집성촌이 있어 쉽게 친척 어르신들을 마주치기도 했고, 젊은 엄마는 그때마다 고개 숙여 수줍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다정하신 분이 아니었고, 우리가 있는 3일 동안 이틀은 아무 이유도 없이 화가 나있었다. 사랑 표현에 서툴러 참 오래 돌아 표현하셨을 사랑을 온전히 느낀 이가 별로 없어 서글프다. 

소고기가 귀한 시절, 할머니는 우리 오는 날에 맞춰 숭덩숭덩 무를 자르고 소고기 뭇국이라는 사치를 부리셨다. 국위에 뜨는 소기름도 아까워 국자로 걷어내지 못하는 할머니 앞에 어느 누구도 기름을 떠낼 수 없었다. 입안을 진하게 코팅한 소기름 탓에 다른 음식은 그저 겉돌았다. 할머니 국은 기름이 국과 섞이지 못한 채 고부관계와 조손관계와 부모자식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비극성의 기름은 극성의 무엇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기름은 식초와도 소금과도, 술이나 음료수에도 섞이거나 어우러지지 못했다. 산속 외딴섬이 불러온 환경적 외로움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타고난 천성이 남들을 밀어내게 된 걸까. 알 수 없는 이유로 엄마아빠 결혼사진에는 할머니가 없다. 그 사진은 어린 눈에도 이상했고 커서도 이상했다. 지금껏 개의치 않은 엄마아빠에 더 이상했다. 


5학년쯤, 혼자 라면을 끓여 먹어도 어른이 걱정하지 않는 나이. 

주방에서 계란을 삶는 내가 못 미더워 다가온 할머니는 소금을 쥐어 냄비에 넣으려 했다. 

"왜요?"

"그래야 잘 까져."

"지난번에 안 넣었는데도 잘 까졌는데요."


일방적인 할머니의 태도가 못마땅해 나는 고집스럽게 냄비 뚜껑을 닫아 누르며 할머니 손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반숙으로 삶으려던 계란이 완숙이 될 때까지 우린 대치했고, 결국 할머니는 계란에 소금을 넣지 못했다. 이것은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와 나, 단 둘의 유일한 기억의 장면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30년이 지났고, 아빠는 30년만큼 늙으셨다. 시간만큼 흐려지고 잊을 잊힌 시간이 지나갔다. 



오랜 친구가 보내온 사진에 오래 잠겼다. 동틀무렵의 산책에서 담아 온 붉고 선명한 해의 출몰과 생명을 거두고 휴식기를 보내는 논 사진 속 대조가 강렬했다. 생명과 생명 없음의 대조, 일어남과 사그라짐의 대조였다.


빈 들에 떠오르는 태양


지난여름 내 눈으로 직접 본 초록 생명력은 사진 속에서 추수를 마친 빈 들로 변해있다. 사진이 그러하니 실제도 그러하다고 믿을 뿐이다. 벼는 베어지고 털어져 포대 안의 쌀이 되었겠지만, 쌀이 지나간 곳에 벼 밑동이 지나간 쌀의 정취를 남겨 놓았다. 지나가는 것들이 다 지나간 뒤에도 지나가지 않는 것들은 남아 있었다. 


시골에 넓게 퍼져있던 그 엷은 공기의 냄새가 논을 태우는 냄새라는 것을 커서야 알게 되었다. 해충 박멸의 목적으로, 거름진 땅을 만들 목적으로 땅을 태웠는데 요즘도 그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건기에 산불로 번져 산도 여럿 태웠던 논 태우기다. 

그 매캐함 속의 구수하고 들큼한 향내는 내게 어쩌면 할머니로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부엌 아궁이에서 볏짚의 열이 쌀밥을 지어낼 때의 냄새이자, 볏짚이 데운 아랫목과 아랫목을 덮어둔 이불에서 나는 냄새. 그리고 다 태우고 남은 재를 모아두는 검은 잿간의 냄새이기도 했던 것이 할머니의 체취와 닮아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더듬어본다. 기억 연상의 줄기를 붙잡고 따라가 보면 그곳엔 뽀얀 흰밥이 있고 기름층이 두꺼운 소고기 뭇국이 있다. 벼와 볏짚과 쌀과 생활로 이어온 냄새는 그렇게 할머니 손으로 귀결되었다. 정겹던 그 냄새가 부지불식간에 내 영혼에 머물러 할머니와 나의 추억이 되어 남아있었다. 


추억하는 것들이 기억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기는 편하다. 기억과 흔적을 남기려고 사진을 찍고 어떤 이는 유적지의 나무에 이름을 새긴다. 온전하다고 생각한 기억은 사실 시간을 거푸 지나오며 희석되고 추가되어 순수한 채로 남아있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오감에 새겨져 말로 옮겨진 적 없는 것들이 희뿌연 촉매제가 되어 고요히 잠들어 묵어있는 것들을 자극한다. 알감자 같은 기억들이 낚시망에 걸려 순수한 모습 그대로 그때를 끌어올렸다. 



주중 하루 쉬는 날, 상하이 외곽에서 딸아이와 식사 후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 시간은 평온했다. 5학년이 된 아이는 제법 우스갯소리도 잘해 우리의 수다와 웃음은 동네의 유일한 소음이 되었다. 인적이 드물어 누렁이가 찻길을 건너도 아슬아슬하지 않았고 수확한 참깨를 햇볕에 말리는 분주한 손길을 바라보는 것이 정겨웠다. 순간, 코끝을 아주 무심히 스치고 냄새에 난 어김없이 할머니를 떠올렸다. 내게도 할머니가 있었지

매일 반복되어 사소하고도 미미한 순간들은 뚜렷한 형태를 가지지 못한 채 기억에 저장되지 못하고 시간 속에 표류하고 가라앉는다. 그 시절 정취와 맛과 냄새와 잡은 손의 따뜻함은 기억의 심연에서 언제, 무엇을 끌어올릴지 예상하기 어렵다.  


서글프다. 기억하는 사람은 이편에 있는데 대상은 저편에 있어 이 추억을 함께 곱씹을 수가 없다. 결국 반쪽짜리 기억이다. 내 기억이 맞아, 네 기억이 맞아 옥신각신 할 필요도 없는 그런 류의 기억이다. 숫자 19 다음에 20이 오듯이, 죽음은 누구에게도 당연하게 다가온다. 그날이 오면 나의 반쪽뿐이던 나의 일방적인 기억은 어디로 가는가. 


떠나버린 이들의 남겨진 기억들이 미세먼지처럼 대기 중에 그득히 떠다닌다. 고산병을 위한 산소통처럼 추억팔이와 향수병을 위한 냄새통이 있다면 어떨까. 후각의 기억은 머릿속 장면들보다 강렬하다. 훗날, 추억의 냄새를 파는 상인이 있다면 나는 시골의 논 태우는 냄새를 제일 먼저 대여하고 싶다. 깔때기에 코를 묻고 폐부 깊숙이, 깊숙한 기억을 부활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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