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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폐자전거

총량의 법칙에 기대어

by 엄민정 새벽소리

흥미로운 장면을 마주쳤습니다.

길가의 고장 난 공용자전거를 수거하는 봉고차 한 대가 내 앞을 달리고 있습니다. 앞 좌석을 제외하고 짐 트럭처럼 개조한 뒷자리에는 노란색 공용자전거가 아귀다툼하며 뒤엉켜 들어가 있습니다. 안쪽에 쌓인 자전거들은 이미 체념한 얼굴로 얌전히 굴지만 아직 팔팔한 것들은 문밖으로 엉덩이를 내밀고 처절하게 틈을 찾아 발버둥을 칩니다. 나름의 규칙으로 쌓았음에도 틈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는 어쩔 수 없었을 테죠. 완전히 닫히지 못하는 문짝 사이에 두툼한 막대기 하나가 뒷문을 단단히 붙들어 매었습니다. 그도 모자라, 운전기사는 몇 대를 문밖에 가로로 야무지게 묶었습니다.


아스라이 얹힌 자전거의 바퀴는 달리는 차가 만들어내는 풍속으로 신나게 돌아갑니다. 직선의 바큇살이 바람을 만나 연기 같은 면적이 되면 순간 자전거는 멈춰 있으면서도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폐차장으로 향하는 자전거가 다그치듯 다가오는 삶의 데드라인 앞에 전속력으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아쉬워하듯 허공에서나마 이뤄가는 중일까요. 발산하지 못한 채 사그라지고 말 젊음의 기운을 보란 듯이 내뿜어보는 중일까요. 고장 난 몸일지라도 아직 쓸만하다는 것을 기어이 증명하고 싶은 것일지도요.


‘총량의 법칙’이라는 이미 낡아버린 표현에 나는 자주 기대어 마음을 곧추세웁니다. 모든 삶에 행복도 고통도, 지랄도, 다 총량이 있어 양을 채워야 벗어날 수 있다는 논리인데, 여기서 한 가지 희소식은 총량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은근슬쩍 늘이거나 줄인다 해서 문제 되지 않을뿐더러 나 자신마저 속일 수 있다는 말로도 해석은 자유롭습니다. 그 총량에 대해 계산이 불가능한 지점까지 파고들다가, 얼떨결에 이 말속에 숨겨진 꼼수를 알아차리고 말았습니다. 그건 우리가 총량을 알 수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중요한 건, 삶이라는 한정된 파이 안에서 이 각각의 총량이 파이 위에선 분량이 된다는 겁니다. 어느 쪽으로든 땅따먹기 하듯 원하는 분량을 채워가면 될 일인 것이지요.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평생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부인할 수 없이 줄어가는 삶의 잔고와 생애의 결산 앞에서 거지중천으로 내달리는 자전거를 보며, 내 안의 체화된 게으름을 채근합니다. 도로를 달리며 남긴 바퀴의 스키드처럼 생의 흔적을 남길 것인가, 이용자를 기다리며 자신의 순간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공중을 내달릴 것인가. 삶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한정된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총량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길가의 자전거에 올라타며, 나는 나만의 분량을 묵묵히 쌓아가려 합니다. 당신의 오늘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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