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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의 말들

계속 쓰는 사람

영화와 시

by 엄민정 새벽소리
희망 없이 지속하기.

정지돈 <영화와 시>


한동안 브런치를 접어두었다. 다급한 일이 새살처럼 돋아나 자연스레 미뤄진 것인데, 쉬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쉬지 못한 날이 많았다. 글을 쓰며 살기로 마음먹은 이후의 삶, 그 정면과 이면을 헤아려보는 일로 난 좀 분주했다. 그건 기록이면서 동시에 쉽게 해이해지는 자신을 향한 채찍이었고, 비슷한 누군가를 공감하기 위한 시도였다.

쓰기 전과 후, 그리고 그 사이를 다시 이등분하여 목차를 정했다. 일주일에 평균 세 꼭지를 썼고, 그 사이 일상의 다른 일을 돌보며 초고를 완성했다. 짬을 내어 글쓰기 수업도 들었다. 조언을 구했고, 산산조각이 나기도 했다. 펀치는 처음엔 아팠지만 갈수록 맷집은 늘었다. 넘어졌지만 쓰러지진 않으려 정신 줄을 붙잡았고, 쓰러지더라도 포기하진 않으려 눈알에 힘을 줘 끔뻑였다. 나는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다. 쓰고 싶은 글이 있는 것이다.


잘하려 할수록 손끝은 뚝딱거렸다. 조언을 의식할수록 내 의식이 자꾸만 멈춰 섰다. 맘 편히 쏟아내지 못해 마음은 조급했고, 글은 정제되지 못한 채 거친 모래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당연하게도, 내 글은 다시 빨간 줄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이따금, 아니 아주 자주 물었다.

"나는 계속 쓸 수 있을까?"


희망 없이 지속해 본 날들이 떠오른 건 이즈음이었다.

"그렇게 운전하면 큰일 나요." 도로주행 시험 중 경찰이 다급하게 뱉은 한 마디.

"너 그렇게 살지 마." 지긋지긋한 대립 상황에서 들었던 누군가의 말.

인생이든 운전이든 애초부터 내게 희망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십 년 넘게 무사고 운전을 하고, 인생 또한 해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그 가시 같던 말이 뼈에 새겨져 길잡이를 해준 건 아닐지.


쓰기에도 교과서가 있다면, 나는 여전히 교과서를 잘 따라가지 못한다. 진도를 놓치기 일쑤이고, 정답을 외우는 일도 서툴다. 하지만 꾸준히 쓰는 것으로 재능을 따라잡고 싶다. 재능 없는 꾸준함이 어떤 힘을 가지는지 확인하고 싶다. 익힘책을 풀듯 매일 글을 쓴다. 반복되는 문제 속에서, 틀리고 또 틀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끝에 생길락 말락 하는 감각이 들겠지. 어제 포기해 버렸다면 알 수 없었을 감각.

최근, 초고를 퇴고하고 출판사에 투고를 하면서 다시 희망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희망이 있을까?

그리고, 그 문제에 답하는 대신 재문했다.

희망이 있어야만 계속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계속하는 것 자체가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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