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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두 얼굴

감정의 착시

by 엄민정 새벽소리

유난히도 하얀 이가 햇빛 아래 반짝였다. 피부는 그을려 치아와 명암대비가 뚜렷했고, 만개한 입매무새의 얼굴이 저 멀리부터 가까워지고 있다.

"저 사람은 뭐가 그리 기쁠까"

웃으며 걷거나 뛰는 사람을 보면 나는 간혹 신기하다고 느낀다. 혼자 있는데도 감정이 밖으로 튀어나온다고? 마치 앞에 누가 있는 것처럼 저런 생글한 표정이 된다고? 그런 얼굴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웃는 얼굴은 보기에 좋다. 나도 언젠가 길을 걷다 광대를 한껏 끌어올려 웃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머쓱해져 관두었다.


모르는 이의 먼 얼굴을 고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내 눈이 그의 초점과 맞닿지 못한다는 사실이 빤한 시선을 가능케 하니까. 수정체는 대상이 멀리 있을 때는 얇다가, 가까워지면서 점점 두꺼워진다. 그와의 거리가 좁혀지며 수정체의 근육이 점점 수축하고 있다. 나는 기대했다. 빛나는 미소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을까. 멀리서 보였던 환한 인상이, 가까워질수록 또렷해질 거라 믿었다. 그러나 거리의 축소는 기대의 확장이 아니었다.

가까워진 얼굴은 웃고 있지 않았다. 쏟아지는 땀에 눈조차 뜨기 버거운, 잔뜩 일그러진 얼굴. 거친 숨결이 벌어진 입을 통해 뿜어져 나왔고, 그 바람은 습하고 뜨거웠다.

정반대의 표정이 이리도 닮아 보일 수 있을까.


수직선 위에 표정의 양극을 표시한다. 왼쪽 끝은 파안대소, 오른쪽 끝은 오만상. 상상 속에서 그 양끝을 잡고 둥글게 맞대어 본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두 표정.

행불행, 복불복, 호불호.


행복과 불행은 서로 얼마나 가깝기에, 우리를 종종 착각하게 하는 걸까. 감정은 얼굴에 먼저 도착하지 않는다. 마음의 깊은 곳에서 떠올라, 표정이라는 얇은 막을 통과해 세상에 비친다. 그 막은 때로는 왜곡되고, 때로는 반사된다. 마라토너의 표정은 오만상이었지만, 내면은 성취감으로 파안대소에 가까워지고 있었을 것이다. 결승의 순간에 미소 짓다 울고, 울다가 웃을 수 있다. 그건 은밀한 곳에 털이 나는 일처럼 당연한 일이다. 감정은 선형이 아니라 원형일지도 모른다. 기쁨과 슬픔은 서로를 감싸 안고, 때로는 같은 얼굴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우리는 그 얼굴을 보고, 착각하고, 이해하고, 또 오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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