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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의 말들

우리는 정말 죄를 지었을까

선이 언니

by 엄민정 새벽소리
선이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이었다. 괜찮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 혼자 살아내느라 애썼다고 말해 줄 사람, 무엇보다 이 고통을 짊어진 게 선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해 줄 내 편이 필요했다.

김정아 <선이 언니>


어릴 적 일이라 잘 모른다. 알려할수록 '애들은 가라'고 했다. 그녀는 마지막 그날도 고쟁이 안쪽에서 꼬깃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네었다. 나는 엄마에게 배운 대로 거절의 손사래를 몇 번 치다가 넙쭉 받았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사라졌다.


엄마는 개근상을 이유로 할머니 장례식에 오지 못하게 했다. 초등 6년 개근상은 내게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일과 맞바꾼 것이었다. 장례식에 가도 개근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집 안에는 내내 쉬쉬하는 기운이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손때 묻은 성경책을 만지며 울었다. 엄마와 할머니, 그 둘 사이엔 12월의 한파 같은 말들이 오갔다. 내가 짐작하는 것은 여전히 그 지점까지다.


누군가의 죽음은 언제나 책임이나 죄책감을 불러온다. 엄마는 할머니를 따라가고 싶어 했고, 화가 날 때면 그것을 핑계 삼아 창고에 있는 농약 바구니를 뒤지곤 했다. 그 앞에서 울며 매달리던 내 어린 시절이 있었다. 죽음을 빌미로 한 협박은 수동으로든, 주동으로든 일어났다. 그것은 무의식 중에 내게도 학습되어, 관계의 온도가 식을 때면 필살기처럼 꺼내 쓰기도 했다. 나는 그 시절, 그것을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남기는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복수라 여겼다.


장성한 지금, 나는 엄마를 이해하고 할머니를 오해하지 않는다. 그때의 감정은 복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이르러, 그것이 결국 모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참기 힘든 자신을 비관한 일이었고,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고 싶지 않은 마지막 남은 모정의 발악이었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남은 이들은 풀 수 없는 문제를 안은 채 평생을 아파한다.

'그때 왜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왜 그 손을 잡아주지 못했을까.'

삶은 되감기가 되지 않고 재생만 되는 고장 난 카세트 같아서 우리는 끝내 이 문제에 답할 수 없다.


어느 명절, 엄마의 동기간이 모인 자리에서 엄마는 할머니의 죽음을 자신의 탓이라 말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모두가 똑같이 자기 탓이라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궁금했다. 죽음은 반드시 누군가의 죄책감을 동반해야 하는가. 죄책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혹시 죽음이 만들어낸 허상은 아닐까. 상실에서 비롯된 기억의 흔적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죄라고 오해하는 건 아닐까.

대화 속에는 눈물이 한 줄기 지나갔고, 곧 다시 웃음이 찾아왔다. 함께한 기억, 그리고 남은 자의 앞날. 그뿐인 삶 속에서 마음을 동여맨 밧줄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소설 속 막내는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선이 언니가 감당하게 될 아픔에 대해 걱정한다. 죽음 이후, 남겨진 자가 짊어질 죄책감을 알기에, 막내만은 남아 언니가 업보라 여긴 모든 상처와 오해를 품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건, 둥글게 둥글게 기억 안으로 가족을 모아 안고 싶은 마음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하며, 모든 슬픔과 아픔의 맥을 정리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일로 이 세대를 맺음 하는 일이 제 몫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로써 마침내 가족 모두에게 뒤늦은 무죄 선고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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