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20대, 졸업과 동시에 자랑스러운 직장인이 되어 처음 받아 본 건강검진에서 의외의 질문을 받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듣고 말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기에 그 질문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소리가 들리는 쪽의 손을 들어주세요."
"뿌, 뽀, 삐, 삐이" 잘 들린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삐~~ 이이이", 고음의 음역대에 다다르면 나는 그 어느 쪽 손도 들 수가 없다. 이미 나의 귀에는 청력 테스트기계에서 나오는 소리보다 더 강한 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증상을 '이명(耳鳴)'이라고 부른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 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했다는 사실을.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 유난히도 형광등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어머니께 여쭸다.
"엄마, 형광등에서 계속 "삐~이" 소리가 난디. 시끄러워서 통 잠을 못 자겠어!"
"원래가 그런 거여, 원래가! 형광등이 싸구려라 안 그냐. 긍께 뻘 소리 그만 허고 얼렁 디비 자라 잉!"
그 후로 나는 귀에서 들리는 형광등 소리는 원래가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형광등이 없는 대낮, 학교 운동장 벤치에 편안하게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원래가 그렇다던 형광등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어느새 형광등 소리에서 매미 울음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매~~~ 애~~~ 앰~맴맴"
'여름이 올라먼 아직 한참이나 멀었는디, 이놈의 매미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들려온다냐?'
분명 내 몸에 이상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엄마에게 말하고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엄마 왈!
"원래가 그런 거여, 원래가! 근디 귓속에 매미가 몇 마리 간디? 엄마는 한 열 댓마리 되는 디 니는 몇 마리여? 엄마가 이번 장에 가면 원기소(어릴 적 만병통치 영양제) 하나 사 올랑께 빼묵지 말고 잘 챙기 묵어라 잉!"
그렇게 나는 원래가 그런 매미와 동거를 시작했다. 엄마처럼 열 댓마리는 아니어도 최소한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매미는 운다. 24시간 교대근무를 위해서라면 아마 세 마리 이상은 될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24시간 주 7일, 365일 쉬지 않고 근무하던 매미들이 농성을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회사를 그만둬주면 하고 바랐지만 매미들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나에게 더 많은 걸 내어 놓으라며 더 시끄럽게 농성을 이어갔다.
직장을 다니면서 스트레스받는 날이 많아지고 또 신경이 예민해질수록 매미들의 농성은 더욱 격렬해졌다. 이제 그 소리는 원래가 그런 소리가 아니라 나의 삶을 뒤흔드는 소리가 되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이명 전문 약국을 찾았지만 소용없었다. 급기야 보청기를 권유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술 마시고 재밌게 놀 때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이 없었다. 남들보다 조금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나의 이명을 눈치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의 별명이 '사오정'이었던 것도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결국 특별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불편한 삶을 이어가던 어느 날,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Tinnitus! What if it's more than just a strange sound in your head? Tinnitus is just the medical name for the sound of life, the sound of being, transmitted from the universe."
"이명! 머릿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이상이라면 어떨까? 이명은 우주로부터 전달되는 생명의 소리, 즉 존재의 소리를 의학적으로 그렇게 이름 붙였을 뿐이다.
'아니, 이명이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우주에서 보내는 엄청난 메시지라고?' 그 후로 나는 이명을 다시 해석하기로 했다. 이명은 어쩌면 외계에서 나에게 보내는 '모스부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동안 불편함으로 느껴졌던 이명이 다르게 들려왔다. 오히려 활용가치가 생겼다.
"원래가 그래 원래가! 긍께 인생은 해석하기 나름이여!"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명을 통해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도 나의 귀에는 끊임없이 이명이 들려온다. 하지만 이제 그 이명은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오히려 나는 그 이명을 통해 늘 깨어있는 현재로 돌아온다. 세상에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이명은 나의 영혼처럼 늘 존재한다. 생명의 소리, 존재의 소리로서 말이다.
우리 삶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도 마찬가지다. 존재의 이유로, 생명을 근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다만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벗어날 수 없는 그 진실에서 벗어나려 하기 때문이다.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