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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의라일락 Mar 14. 2024

저는 오늘 사직서를 썼습니다

 너무나도 많이 들어보셨죠. 나는 오늘 퇴사를 했다로 시작되는 이야기. 하지만 이건 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 이야기도 아니고, 대기업의 부품처럼 살던 직장인이 어느날 문득 각성하여 깨어난 이야기도 아니며, 독립을 찬양하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벌써 15년 가까이 카피라이터로 살아온 나날. 언제까지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그냥 이런 삶의 연장전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두둥. 저는 회사에서 쓰러지고야 말았어요. 앞으로 천천히 풀어가겠지만, 꾀병이 아니라 꽤나 혹독한 나날들이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지금 저는 건강해졌어요. 아직도 주의가 필요하지만요.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을 거쳐 회사로 돌아왔고, 다시 평범하게 회사를 다녔고, 그리고 얼마간의 고뇌의 시기를 거쳐 바로 오늘 사표를 내고야 만 것입니다. 물론 조금의 불안을 안은 채로. 


  오랫동안 산다는 것에 대하여 그리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일 닥칠 회의 준비가 인생 준비보다 더 급했으니까요. 어떤 직업이든 그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겠지만,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산다는 것은 정말 4배속, 아니 32배속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냥 관성처럼 갈 줄 알았거든요. 앞으로의 남은 직장인으로서의 제 삶도 말이죠. 하지만 본의 아니게 강제멈춤을 하고 나니, 마치 노트북을 강제종료 하고 난 것 처럼 한 치 앞의 인생이 새까매졌습니다. 도대체, 이거 다시 어떻게 부팅해야 되는 거야? 다시 오류가 나면 어쩌지? 이거 완전히 뻑이 간 거 아냐?


그래서 저는 저라는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몸뚱아리와 잘 살아가기 위해서요. 일단, 나라는 사람의 건강을 무슨 길가에 떨어진 껌처럼 무시했던 날들을 바꿔보기로 했고요. 그래서 아팠던 날들에 대해 처절한 후회 대신 희망(조금 촌스럽지만 가장 적확한 워딩)으로 앞으로의 날들을 채워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저라는 사람이 가진, 일에 대한 체계를 모조리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벌써 광고대행사 15년차인데요, 너무 낡은 툴로만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매번 새로운 광고주를 공부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나며 그 하나하나가 실전이고 경험이었지만, 제가 가진 광고에 대한, 그리고 마케팅과 글쓰기에 대한 지식은, 2008년 대학 졸업할 때의 지식만으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다양하게 저를 채울 수 있는 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뭘 해야 행복한 사람인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인가, 이런 제 안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이제는 귀기울여 주기로 했습니다. 오랫동안 주인이 쳐다보지 않는 강아지처럼, 제 안의 저도 그렇게 많이 외로웠을 것 같아서요. 인생에서 커다란 터닝포인트를 만나고 나니,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손 들고 발표하는 걸 싫어했는데요, 요즘의 저는 매일매일 저에게 손을 들고 질문을 합니다. 너 계속 이대로도 괜찮겠어? 너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너 이게 행복해? 넌 누구와 있을 때 가장 빛나?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유명인도 아니고 별거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가진 고민들을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 지금 나는 이렇게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데, 조금 먼저 고민한 것들이 나와 같은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건 자기개발서는 아니지만 여러분과 깊이 공감하기 위한 이야기이며, 나 좀 응원해 달라고 나 좀 칭찬해 달라고 간절하게 외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해요. 물론 저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동료와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아직 인생이 많이 무섭고 촛불처럼 용기가 꺼질 때도 있거든요. 그럴때 저를 응원해주고 나도 그랬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저는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전에 이런 글을 보게 되었어요. 말을 하기 전에는 그 말이 세 개의 문을 통과하게 하라고. 첫 번째 문은, 그 말이 사실인가? 두 번째 문은, 그 말이 필요한가? 세 번째 문은, 그 말이 따뜻한가? (수피속담) 저는 사실이며 필요하며 따뜻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저는 굉장히 따뜻하고 희망찬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나를 필요로 한다고 느낄 때 행복해져요. 브런치를 통해 독자님들을 만나는 시간이, 저에게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을 때 힘이 되는 글을 남기고 싶습니다. 같이 가요. 저는 동행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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