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잉킴 May 26. 2024

결국 우리가 돈독해야 한다.

방심하면 관리비 폭탄 맞는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난 무조건 짐 정리부터 하고 캐리어를 비우고 원래 자리에 놓는 것 먼저 한다.

당연히 이런 습관 또한 그와 나는 맞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도 빠릿빠릿하지 않은 생활습관을 부끄러워해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따뜻한 미소를 담아 


"우리 주말에는 네 짐정리도 하고 옷정리도 같이 하장?"

"나 혼자 할 수 있어"


난 그의 서툰 손을 못 믿는다.

"내가 도와줄게. 너도 보면서 이 참에 배우는 것도 좋잖아"

"... 그렇지"


옷장은 꽉 차있어도 입을 옷은 없고

냉장고도 꽉 차 있어도 먹을 게 없다. 어머님이 잔뜩 채워두고 가신 거 같은데 정리가 안 돼서 냉장고 파악하는데도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다.


그래도 남편에 대한 싱숭생숭한 마음과 향수병을 가라앉히는데 에너지를 제일 많이 쓴다.


동네에 한국 마트가 문을 열었대서 구경 가봤다. 

오랜만에 본 마트다운 마트였다. 오픈 초라 물건들이 꽉 차 있지는 않았지만 쨍쨍한 조명과 열 맞춰 잘 진열돼 있는 식료품들, 매장에 깔린 음악, 단단하게 완성된 인테리어(삐그적 대지 않는 매장이 얼마만인지), 2층, 수많은 매장직원, 벌레가 나올 것 같지 않은 청결함.


4년 동안 좋아했던 가게들이 많이 닫았고 새로운 가게들도 많이 열렸다.


카페에 가서 다짐한 아침 일과를 마치고 뚜벅뚜벅 오늘도 센터를 혼자 걷다가 집으로 왔다.


역시 최대볼륨으로 식구들과 영상통화하고 있는 남편.


소꼬리를 물에 담가 놓고 짐정리를 시작했다.


막내 동생이 결혼한다고 하면서 늦여름-가을쯤에 같이 프랑스에 가자고 한다.

정작 우리 결혼식에 소극적이다 못해 쓸데없는 자존심 시비만 걸었던 남편 놈..

결국 아무것도 안 한 우리었고 우리 식구들에게 무례했던 지난날의 그의 모습에 기쁘게 "응"이라고 못하고 "생각해 볼게"라고 했다.


절대로 이 묵은 감정을 돌려주지 말자고 했는데 자기 식구들 감싸고도는 모습 보면 왜 이렇게 열이 나는 걸까. 남편은 남편대로 삐졌고 나도 내 나름 화를 식히려고 오래된 옷도 버릴 겸 한 바퀴 돌았다.


'내가 또 속이 좁았구나'로 스스로 마무리했다.


낮잠을 자보려던 차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관리비가 많이 나왔다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나와서 좀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인보이스를 보는데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가격이었다. 다음 달까지 7100 파운드를 내라고?


23년 1월에 이 집을 살 때 만 해도 높은 관리비에 망설였는데 관리소에서는 창문 수리 때문에 잠시 오른 가격이고 곧 내릴 거라고 했었는데.

엘리베이터도 매일 고장이고 도대체 왜 이렇게 남들보다 비싸게 내는 건지 관리단에 물어봐도 지붕 수리로 보험이 올랐다. 입주민들이 건물을 막 쓴다. 뭐 썩 내키지 않는 답변만 있었다.

근데 안 그래도 비싼 가격에서 두 배 반을 더 올릴 거란다. 강 주변 집들에 대해 새로운 규제가 생겨서 울타리를 설치해야 된다나.


애초부터 관리단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내 직관이 기억이 나고 그들의 불평불만만 있는 미팅도 다시 기억이 났다. 아.. 우리가 가마니였구나.


내 좁은 마음을 고쳐주려 이런 이슈를 또 주셨구나. 


식구건 자존심이건 지금 우리는 한 팀이 되어 싸워야 된다.




작가의 이전글 남편에 대한 실망을 긍정적으로 순화하는 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