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결 면도날에 오른손 검지를 깊이 베였다. 묵직하고 차가운 물체가 내 몸 손가락 깊숙이 서걱 침투해 들어왔다. 아차, 싶었을 땐 이미 늦었다. 빨간 피가 손끝에서 샘솟고 있었다. 황급히 휴지를 뜯어 상처를 꾸욱 눌러 지혈했다.
어쩌다 이런 꼴에 이르렀는지 짧은 순간 복기했다. 면도기가 평소 위치에서 벗어나 뒤적거리던 통에 머리부터 들어가 있는 것은 눈으로 보았다. 다만 언제나 얼굴에 대고 잘도 쓱쓱 문지르던 면도날이 이렇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방심했던 나의 우가 컸다. 적당히 뽑은 휴지가 금방 빨갛게 물드는 바람에, 새로 둘둘 말아 뽑아 손에 감았다. 다른 한 손으로 상처입은 손가락을 꼭 감싸 쥔 채 머리 위로, 심장에서 멀리 떨어뜨렸다. 그래야 피가 빨리 멎는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베인 게 처음이 아니었다.
군에 입대한 지도 곧 10년이 된다.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소대장은 내가 서울 소재 대학교에 나온 인재랍시고 행정병으로 뽑아갔다. 투박하기 짝이 없는 손재주와 눈대중을 지닌 내가, 행정병 중에서도 칼각을 재서 공산품처럼 똑같은 크기의 자료들을 대량 제작하는 교육계원이 된 것은 아이러니했다.
어느 주말 오후, 부대원들의 관물대 명패를 전부 새 디자인으로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혼자 행정실 책상 앞에 앉아서 칼질을 했다. 무엇이든 익숙해질 때 방심하는 법이고, 마음이 급할 때 안이해지는 법이다. 불행히도 그날의 나는 둘 다 해당되었다. 꼴에 일한 지 2개월이 넘은지라, 밑에 후임도 처음 받아서 자만심도 스멀스멀 올라왔고, 무엇보다 주말이니 빨리 일 끝내고 쉬러 가고 싶었다.
행정병에게 칼이냐 가위냐는 속도 vs 안전성의 문제다. 가위질은 느리고, 자른 단면이 예쁘게 일자로 나오지도 않는다. 그에 비해 칼질은 기다란 철자를 대고 슥슥 하면 모양도 예쁘고 속도도 점차 붙어 그야말로 대량생산 공장장이 된 기분이다. 다만 단점이라면 피를 볼 수 있다는 것일 텐데, 아직 이에 대한 자각은 없었다. 서걱.
서늘한 느낌이 들었나 싶더니, 왼손 약지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당시 나는 응급처치법을 전혀 숙지하고 있지 않았다. 휴지를 몇 장 뽑아 상처에 가져다 댔는데 피가 안 멈췄다. 당황한 나머지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연신 닦아내면서 멈추기만을 앉은 채로 기다렸다. 하지만 상당히 깊게 베였던지라 그 정도 조치로는 어림도 없었다. 도움을 청해야겠다 싶어 엉거주춤 일어나 당직실에 보고하러 행정반을 나왔다. 당직실은 2층에 있었고, 계단을 올라가던 중 선임을 만났다. 평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이다. 하지만 나에겐 하늘 같은 1년 선임이었으며, 개인적으로 사람은 착하다고 보았다.
“허 상병님, 수고하십시오.”
“응 쿼카링, 어디 가니?”
“제가 작업하다 다쳤는데, 피가 안 멈춰서 당직실에 보고하러 갑니다.”
“그래? 어디 봐봐.”
선임은 피가 철철 흐르는 손가락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일단 화장실로 가서 씻어보는 게 어때?”
딴에는 선임의 관록을 보여주려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악수였다. 하지만 그저 선임 말이라고 그대로 따랐던 내 책임도 크다. 수도꼭지를 돌려 찬물로 상처를 씻어내며 따끔따끔한 고통을 견뎠지만, 붉은 물줄기만 하염없이 흘러내릴 뿐이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선임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 안 멈추네... 당직실 가야겠다.”
“네.”
그렇게 손가락을 부여잡고 당직실에 찾아가서 노크하고 문을 열었다.
“충성! 일병 쿼카링. 용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온통 새까매졌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닥에 누워있었고, 당직사관 이하 여러 선임병들이 나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너 기절했어, 임마.”
“잘 못 들었습니다?”
“계속 기절해있으면 CPR(심폐소생술) 하려고 했다. 그거 제대로 하면 갈비뼈 박살날 수도 있는 거 알지? 그 전에 깨어나서 다행이다.”
선임들은 나를 들어 올려 의자 위에 다리를 뻗은 채로 앉혀놓고 팔과 다리를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그래야 피가 돈다면서. 선임에게 안마받은 후임은 아마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실없는 생각이나 하며 멍하니 몸을 맡겼다. 나중에 듣고 보니 나는 당직실에 들어가자마자 의식을 잃고 뒤로 쓰러져 머리부터 바닥과 충돌했다고 한다. 마침 문밖 복도를 지나고 있던 선임은 커다란 수박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나의 기절에 대하여 선임들의 중론은 피를 보고 놀라서 기절했다, 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이 못내 불만스러웠으나 토를 달지는 못했다. 강인함과 남성성으로 충만한 군대의 가치관을 한껏 주입받았던 풋내기 군인 시절의 나는 나약하다는 시선으로 평가받는 느낌이 불편했다. 칼에 베이고 당직실에 이르기까지 어떤 파란만장한 여정이 있었는지 그들은 모르고 하는 소리 아닌가! 그래서 이후 관련 주제가 나오면 군의대에서 무려 세.바.늘.을 꿰맨 큰 상처였다고 은근히 강조해서 말했다. 하지만 거친 삶을 살아온 자들이 많이 모인 군대에서 그 사실은 그다지 인상깊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더구나 그 사건 이후 여러 해에 걸쳐 피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몇 번 더 겪은 후, 인정하기 싫지만 아마도 나는 피를 보고 기절한 게 맞는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그 이야기들은 나중 기회에 써보려 한다.
휴지를 떼고 피가 멎은 손가락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움푹 파인 손가락 살 한 덩이가 불안하게 손끝에 매달려 있었다. 한동안 불편하겠구나. 오래된 약상자를 꺼내 빨간약을 꺼내 상처를 소독하고, 밴드로 칭칭 감쌌다.
그런데 불현듯 묘한 고양감이 온몸을 감쌌다. 무난하게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고, 과거에 비해 확실히 느껴지는 육체의 노화를 조금이라도 막아보겠답시고 운동을 해오던 나에게, 이 붉은 경험은 간만에 신선했다. 내 몸에 생긴 상처, 그 상처에서 뚝뚝 흘러내린 피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이야 조금 아프고, 조금 불편하겠지만 내 세포들은 이 예기치 못한 자극에 반응하여 열심히 분열할 것이고, 새 살이 돋을 것이고, 조금 더 강건한 육체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그래봤자 단단한 오른쪽 검지 손가락 한 짝이잖아, 혼자 피식 웃고 자리에 앉았다. 이런 유치한 고양감을 느낀다는 자체가 아직 젊은 게 아닐까. 밤을 달리는 바람에 창이 우웅우웅 흔들리며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