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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Sep 16. 2024

바다에 가고 싶다.

우리가 너무 행복해서 바다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다에 가고 싶다.


바다에는 추억이 있다. 어렸을 때 가족과 제주도에서 함께했던 추억,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주 가던 캠핑장 같은. 여행은 우리에게 커다란 추억을 안겨주고 가끔 꺼내볼 수 있는 과거가 된다.


나는 바다가 좋다.


햇빛이 만드는 바다의 윤슬. 육지로 다가오는 파도의 흐름. 넘실거리는 바다의 수평선이. 멀리서 바라봐도 좋지만 가까이에서 바다를 느끼는 것도 좋다. 신발 없이 바다 위를 걷는다. 파도가 발목을 잡았다 도망간다. 자꾸만 파도 소리가 들릴 거다. 그럴 때면 우리 가족이 지금보다 여유가 있었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바다에 갈 수만 있다면.


요즈음 많은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대장암일 수도 있단 의사의 진단 결과를 듣고서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아프시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지금일 줄은 몰랐고 아니어야 했다. 내시경을 했고 결과가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대장암은 아니고 맹장이란다. 이버지께선 3개월 동안 진통제로 고통을 참으시며 노동을 하신 거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추석 때 오랜만에 가려던 캠핑을 못 가서 그런 것도 아니고. 친척과 만나지 못해서도 아니며. 밤낮 없이 일하시는 아버지가, 쉬는 날도 없이 일하시던 아버지가. 그렇게 강인해 보였던 아버지도 언젠가 죽겠구나. 아프실 수 있구나.


우리는 바다로 가야 한다.


바다가 좋다. 바다로 가고 싶다. 우린 더 많은 추억을 쌓아야 했고, 그러지 못한 나는 자꾸만 바다로 갔다. 가끔 바다로 가서 해맑은 나에게 말을 건다. 정말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부러움도 느껴질 거고. 그렇지만 그 사람이 그 순간을 소중히 여겼으면. 하는 마음.


우리가 너무 행복해서 바다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순수한 생각을 해본다. 순수한 바람을 해본다. 자꾸만 바다로 가는 마음을 붙잡고 육지로 돌아온다. 현실의 우리를 직시한다. 너무 가냘파 보여 비참하기도 할 거다. 그래도 틀어진 지금을 바라보며 바다의 추억을 쌓다가 새로이 생길 바다가 들어갈 자리도 남겨둔다. 우린 더 많은 추억을 쌓고 더 행복해질 거다. 비참해서 가는 바다가 아닌, 너무나 행복해서 바다에 갈 거다. 그렇게 살아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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