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풍경

<과수원> 1

by 눈항아리


다른 바다에는 무성하던 소나무 숲이 명태 마을에는 없었다. 학교 소풍 장소는 늘 10분 거리에 있는 해수욕장 솔밭이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명태 마을은 해송을 다 밀어버리고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어쩌면 해송이 있기 전부터 먼 옛날부터 바닷가 모래밭 앞에 집들이 자리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집 마루에 앉으면 바다가 바로 보였다. 그 마을은 보이는 것이라고는 푸르뎅뎅한 바다가 전부인 회색빛 마을이었다.


아버지도 시멘트 블록으로 된 직사각형의 방과 직사각형의 마루, 회색빛 마당의 삭막함을 알았다. 젊어서 배를 탔다고 했고, 나이가 들면서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고 사는 아버지였다. 20여분 털털거리는 경운기를 끌고, 부들거리는 오토바이 하나를 타고 다니며 들일을 하는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직업란에 나는 늘 농부라고 적었다.


농부 아버지는 뭐든 잘 키웠다. 명태 마을에 살 적, 수돗가 옆 무릎 높이의 장독대의 시멘트를 깨부수고 화단을 만들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은 동요 속에서 상상하는 모습과 닮았다. 채송화는 없었지만 봉숭아가 피었다. 봉숭아 씨가 톡 터지는 걸 보고 손대면 토옥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하며 노래를 불렀다. 봉숭아 꽃이 피면 꽃과 잎을 찧고 백반을 섞어 손톱에 꽃물을 들였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을 따라 노래처럼 정말로 나팔꽃이 올라가고 보라색 꽃을 피웠다. 그런 노래 같은 화단이 우리 집 삭막한 마당에 있었다. 중앙에는 적목련 한 그루가 자리했고 새끼줄 따라 올라가는 호박 줄기가 작은 화단에 지붕 그늘을 만들어줬다. 이제와 생각하면 아버지는 화단에 비료를 듬뿍 줬던 것 같다.


과수원으로 이사를 가서 뭐든 마음껏 키울 수 있게 된 아버지는 열심히 밭을 일구고 거름을 뿌렸다. 나무와 식물에 붙어살았다. 일이 일을 부르고 삶 속으로 일이 들어온 생활이었다. 그곳은 천혜의 요새였다. 일터의 요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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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발견하기 위해 귀 기울이다 자연스레 글쓰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자연, 시골생활, 출퇴근길,사남매의 때늦은 육아 일기를 씁니다. 쓰면서 삶을 알아가고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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