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똥을 싣고 달려

<과수원>2

by 눈항아리

이 글은 나를 치유하기 위함이다.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아도 진정 어린 명희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다. 마흔이 넘은 나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세월이 흐른 나의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과수원>의 화자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다. 어린 나에게는 부모에게 야속하다 여겼던 일들이 허다했다. 그런데 이제 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된다. 속상하게도 그렇다. 아버지의 일상이 들여다 보이고 어쩔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그 자리를 지켜낸 아버지. 불쌍한 어린 명희를 바라보고 썼던 글이 어느 순간 아버지를 조명하게 되었다.




나무로 된 격자무늬 문살에 흰색 창호지가 붙어 있었다. 거친 질감의 창호지를 뚫고 여린 햇살이 비치어 들어왔다. 나는 은은한 아침 빛줄기에 설핏 잠에서 깼다. 감은 눈을 하고서 잠결에 아버지의 목소리를 드었다. 굵직하게 울리는 아버지의 목소리 때문에 먼저 깼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수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높다란 문지방과 문지방이 만나는 구석진 모서리에 놓인 까만색 전화기였다. 상대가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이튿날 거름을 실으러 간다는 내용이었다.



과수원의 봄은 흐드러진 꽃과 함께 찾아오는 줄 알았다. 마른 가지 앙상한 겨울을 보내고 봄꽃을 맞이하기 전에 할 일이 태산이란 건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아침을 알려주는 건 태양빛인데 봄을 알려주는 건 소의 배설물이다. 꽃이 피기 전에 나무에 영양분을 듬뿍 뿌려줘야 한다. 봄바람이 불기 전,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가시기 전에 아버지는 서둘러 축사에 전화를 한 것이다.


며칠 후 나무 사이사이에 똥 무더기가 쌓였다. 경운기가 지나가며 부려놓은 똥 무더기였다. 그 크기는 두 팔을 벌려 잰 것보다 더 넓었고, 키는 내 가슴만큼 왔다. 색깔은 구질구질하고 윤기가 흘렀다. 아버지는 쇠스랑을 하나씩 우리 손에 쥐여주었다. 거름을 펼치라는 뜻이리라. 해 본 적 없어도 척하면 척이다. 거름더미를 장홧발로 밟고 다니며 똥을 파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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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발견하기 위해 귀 기울이다 자연스레 글쓰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자연, 시골생활, 출퇴근길,사남매의 때늦은 육아 일기를 씁니다. 쓰면서 삶을 알아가고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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