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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Aug 22. 2024

체육복을 빨아주세요 주문

또 얼굴이 파묻혔다. 그건 과식 때문이다. 잠을 설쳤다. 그건 복동이의 체육복 빨래 때문인지도 모른다. 교복을 빨아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왜 잠을 못 자는 것일까. 자녀의 부탁은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일을 해놓지 않으면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새벽 3시에도 엄마의 몸을 벌떡 일으키는  강력한 주문이다.


어젯밤 베란다와 세탁기의 기능이 마비되었다. 갑자기 나타난, 늘 돌아다니는 그리마 때문이다. 문을 꼭 닫고 빨래는 방치했다. 그리마가 알아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으나 그걸 확인할 사람이 없다. 175에 달하는 큰 녀석이 주저앉아 그런다.


“엄마는 어른이잖아요.”


“너는 나보다 크잖아.”


서로 미루다 베란다는 잠긴 문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빠에게 말이라도 하고 세탁기를 돌리던지 해야지 새벽에 일어나 보니 그대로다. 그리마는 어디로 가고 없었다. 새벽 댓바람부터 빨래를 돌리고 건조까지 완벽하게 해 내었다.


그런데 복동이의 옷은 건조기에 없었다. 아이는 한참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우선 복이의 옷장을 턴다.  소파 위 빨래도 마구 흩어 놓으며 찾는다. 연신 돌아다니다 자신의 방에서 옷을 발견하고 울상이다. 그리마가 무서워 베란다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소리만 질렀던 것이 생각났다. 입은 옷을 베란다 빨래 바구니에 넣지도 못한 것이었다. 맞다 복동이는 키만 멀대같이 커가지고 엄마가 세탁기에 옷을 넣고 있는 사이 뭐가 나타났는지 말도 않고 문 앞에서 “어어어어!”하며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아이의 경고음에 얼른 뛰쳐 들어가 문부터 잠그로 그대로 새벽이 되었던 것이다. 손에 들었던 체육복 빨래는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방으로.


어제 입었던 옷을 입고 갈까 고민한다. 냄새가 심하다. 청소년 아이의 땀내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침에 씻은 잠시 동안만 참아줄 만하다. 아빠와 엄마가 뜯어 말리자 동생의 좀 작은 옷을 입고 출발한다. 딱 맞아 보이는데 자꾸 작다며 옷자락을 잡아 늘린다.


예쁘다고 젊어서 참 예쁘다고! 그리마 무서워하는 울 아들 참 예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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