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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Nov 19. 2024

뱃속에 밥 한 술

잊지말자 건강검진

“밥 딱 한 숟가락만 먹었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


오랜만에 남편 기사를 운전석에 태우고 같이 출근했다. 조수석에 앉으면 세상에 없는 귀한 부인이 된 것 같다. 눈부신 햇볕도 따뜻하고 열선 올린 등도 따뜻하다. 노곤하니 잠이 온다. 아침 출근 20분을 아침잠으로도 채울 수 있는 평화롭고 조용한 시간 사색의 나라로 빠져들 수도 있다. 가끔만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왜 밥 한 숟가락을 거론하며 간절한 목소리로 전화 너머의 여자에게 말을 건네는 건가.


미루고 미뤘던 건강검진의 날이다. 연말에 하면 예약을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최대한 미뤄 11월로 잡았다. 우려와 달리 바로 예약이 잡혀서 놀랐다. 아이들 등교를 시켜놓고 바로 병원에 가려고 예약을 해 놨었다. 미리 문진표를 작성하라고 톡이 왔다. 톡을 확인하고 문진표를 작성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이틀 지나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톡을 못 봤냐고 한다. 문진표를 꼭 작성하고 병원에 오라고 했다. 또 해야지 생각만 했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을 때 복동이가 옆에 있었다. 왜 그런 걸 바로 안 하냐며 잔소리를 했다. ‘시간 나면 할게. 엄마가 바빠서 그래. 병원 가기 전에 하기만 하면 되는걸. ’ 그때 할걸 그랬다. 그리고 문진표는 새까맣게 잊었다. 건강검진 날짜도 잊었다.


잊었던 것이 아침의 평화롭고 고요하고 소중한 시간에 번뜩 생각이 난 것이다. 그나마 출근길에 생각이 나서 다행이다. 기억력 최고! 다행스럽게도 예약 시간까지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다섯 명이 각자의 목적지에 내리고 나면 차를 끌고 병원에 다녀와야지 하고 생각했다.


달리는 차 조수석에 앉아 미뤄뒀던 문진표를 작성했다. 서둘러 핸드폰 속에 병원 사이트를 열었다. 작은 핸드폰 속 작은 문진표 글씨, 체크 표시를 하려면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확대를 해야 체크를 할 수 있었다. 체크 항목은 37개였던가 엄청 많았다. 따뜻한 온풍기 바람을 쐬며 작은 글씨를 한참 들여다보며 차를 타고 달렸더니 멀미가 올라온다. 나 위내시경 할 수 있을까. 너무 힘들 것 같은데... 정말 내시경은 하기 싫은데... 그런데 거의 마지막 즈음 안내문에 반가운 글씨가 나왔다. 위 내시경을 안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글씨가 확대되어 눈에 확 들어왔다.

먹지 마세요.

문진표 저장을 누르고 당장 병원에 전화를 했다.

“딱 한 숟가락 먹었는데 어찌 안 될까요? 네? ”

“안 됩니다. ”

위 내시경할 때 음식 때문에 검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예스!  나이스! ’

예약을 다시 잡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며칠 더 미룰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며칠 후에 해도 똑같이 하는 걸. 요리조리 피해봤자 꼭 해야 할 일인데. 다음번 예약은 잊지 말도록  하자. 기억하자. 메모하자. 알람설정하자.


그리고 절대 먹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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