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근영 Dec 22. 2024

훌륭한 장수를 휘하에 두어라

퇴근 후 일과가 되어가고 있는 소파 지키기 프로젝트입니다. 이제는 집에 도착하면 거실로 모이는 게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빨래를 개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증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족 모두 모이는 게 아닙니다. 생각이 난 사람만 모입니다. 한 명이라도 주부의 옆을 지켜준다는 게 어딥니까.

그런데 남편이 옆을 지켜주는 날은 다릅니다. 지지자가 누구냐에 따라 주부와 빨래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남편은 아이들 지휘를 잘하거든요. 자신의 손은 절대 움직이지 않고 말로 아이들을 휘어잡습니다. 아이들은 진심을 다해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지요. 강압적인 건 절대 아닙니다. 그만한 보상은 늘 따라오니까요. 바로 용돈을 주냐고요? 아니요. 그런 것도 아닌데 그만의 다른 노하우가 쌓여있습니다.. 여하튼 그건 남편의 능력입니다. 부러울 따름이지요.

어제는 능력자 남편이 지지자로 나섰습니다. 빗길 운전으로 천천히 왔더니 먼저 쌩 달려 집에 먼저 와 있더군요. 남편이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그럽니다.

“얘들아 엄마 빨래 개는 거 도와주자. 엄마 사진 찍어야 해! ”

우르르 몰려나오는 아이들이 신기할 뿐입니다. 전날 밤 돌린 빨래 양이 꽤 많았는데 여럿이 하니 금방 없어졌습니다. 협동의 의미를 아는 날입니다.

제가 빨래에 신경을 쓰니 남편도 따라 신경을 써줍니다. 늦게 출근하는 날 건조기 속 미처 꺼내지 못하고 간 빨래를 꺼내주기도 합니다. 어제 아침에는 복이의 이불을 건조기에 넣고 깜빡하고 출근했지요.

남편은 빨래터에 세워둔 건조대를 거실로 꺼내와 펴고 건조기에서 이불을 꺼내 널어놓고 출근했더라고요. 보통은 신경을 안 쓰는데 말입니다. 끝나는 시간을 확인해서 꺼내 널고 갔다는 겁니다. 어제는 출근하면서 ‘빨래 꺼내줘. ’ 문자도 안 보냈는데 말입니다.

역시 주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는 남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빨래를 개느냐? 절대 아닙니다. 아이들을 불러 빨래 개기를 시키고 자신은 서서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두고 볼 주부가 아닙니다. 남아도는 손을 어떻게든 써먹어야지요. 그래서 남편에게 빨래 갠 것을 건네주었습니다. 바로 옆에 선 그에게 빨래를 받으라고 손 앞에 디밀었으나 못 알아듣습니다. 세 번이나 말하고 나서야 알아듣습니다. 남편이 자신의 빨래를 들고 자신의 서랍장으로 갑니다.

역시 능력 있는 장수를 휘하에 두어야 합니다. 남편은 지휘도 잘하고 시키는 것도 잘하는 능력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