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이 뒤집혀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뒤집힌 양말도 그대로 잘 말아서 넣을 수 있습니다. 옷 솔기가 살아있는 뒤집힌 옷도 잘 갭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요 며칠 뒤집어진 옷을 다시 뒤집어 탈탈 털어 반듯하게 개어 서랍장에 넣기는 했습니다. 양말이 자꾸 거슬립니다.
뒤집힌 양말을 뒤집을까 말까.
양말을 뒤집어서 말린 채로 세탁 바구니에 던져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멀쩡히 벗어둔 양말이 없다고 하는 편이 옳습니다. 나의 습관을 한번 되돌아보아도 좋습니다.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일이라 나 자신도 모를 수 있습니다.
소파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양말을 제 얼굴이 보이도록 뒤집었습니다. 소파 위의 양말은 세탁과 건조를 거쳐 나오는 양말이지요. 벌써 정리해 말아놓은 양말도 다시 풀었습니다. 뒤집으니 겉과 속이 다릅니다. 색깔이 달라 짝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이제야 ‘내가 또 뭔가를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나는 그랬을까.
음력 5월 5일 단오제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닭꼬치를 먹으며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의 남대천변을 걸으며 양말 두 묶음을 샀지요. 그런데 왜 같은 색으로 안 샀을까요? 모양도 크기도 다 같은데 왜 색깔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양말을 두 묶음 산 것일까요? 왜 양말을 살 때 하나로 통일하지 않았을까요. 다른 것을 사려면 아예 다른 모양이나 차이가 확 나는 양말을 살 것이지, 색깔이 한 톤 차이도 아니고 확연히 차이 나 짝짝으로 신고 다닐 수도 없는데...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과거에 산 양말을 보며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양말을 뒤집어 색깔을 확인해 다시 말았습니다.
양말 하나를 사더라도 통일감 있게!
비슷한 양말은 사는 게 아닙니다.
22일 차 소파도 지켜냈습니다. 어제도 소파는 사용하지 못하였습니다. 소파의 시녀로 인정받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