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홀릭
딸아이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사주었던 피아노.
나 자랄 때는 누리지 못했던 '피아노 있는 집'이 되는 호사를
자식한테 해 주었을 때 얼마나 뿌듯했던지.
피아노 들이던 날 나처럼 좋아했던 딸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피아노 치기를 지루해했고,
중학생이 되자 그 앞에 앉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랬는데도, 그 피아노는 늘 딸 방에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고, 결혼을 하여 우리 집만이 아니라 한국을 떠나버렸는데도 말이다.
그런 피아노를 내가 대신 사랑해 주기로 했다.
딸이 떠난 방에서 띵똥거리며, 딸이 앉았던 모습도 그리워도 하면서,
'피아노야, 내가 너를 오래오래 사랑해 줄게' 마음 먹었다.
그러다, 지난 해, 집수리를 진행하면서 딸 방에 있던 피아노를 거실 한가운데로 내놓았다.
오래된 국내산 피아노. 나로서는 너무너무 비싼 값을 치르고 산,
그 기쁨의 상대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버리지 못하는 가구가 아니라 무척 애정하는 대상으로 만들기로 했는데...
거실에 내놓고, 조율도 다시 하고, 그리고 소원하던 피아노 레슨도 시작했다.
비록 바이엘 하권이지만 딩동댕동 동당 퐁당... 하며 건반을 두드리면 그 소리가 얼마나 이쁘던 지.
그런데, 아뿔싸.
가끔 내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건반, 어떤 음에서인지 잘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에 들리는 거슬리는 소리,
지이잉..
30년이 거의 다 된 국내산 피아노. 버릴 때란 말인가?
요즘 명품 피아노도 저렴히 구할 수 있다는데, 이 참에 피아노를 바꿔 봐?
입문자 주제에? 그러나 나는 이제 취미생활에 돈 좀 써도 되는 은퇴자니까...
뭐 이런 생각으로 소형 그랜드 피아노의 값까지 알아보며
오래된 우리 집 피아노를 슬슬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며칠 전 미국 사는 딸아이가 남편과 함께 다니러 왔다. 사위는 피아니스트.
'어머니, 집에서 연습 좀 해도 될까요? ' 하며 손가락 풀기를 연습하는데...
우와아~~~~
거실 천장이 높이 들리고, 앞 뒤 베란다 창문이 활짝 열리는 듯한 느낌!
우리 집 피아노가 저런 소리를 낸다고?
사위는 그저 손가락 풀기를 할 뿐인데, 피아노가 내는 소리는 베토벤인지 모짜르트인지..
아무튼 천상의 소리 같았다.
놀란 마음으로 감탄하면서도 이때다 싶어, 내가 듣곤 했던 그 지저분한 소리에 대하여
사위에게 물어보았다.
여기요, 여기? 아님, 요기요? 요기?
사위가 이렇게 저렇게 열심히 짚어주는데... 그 소리.. 찾을 수가 없었다. ㅠㅠ
그런데 내가 피아노를 치면...
사위가 지켜보고 있어서 엄청 긴장하며 딩동댕동 열심히 쳐 보았다.
아 그런데 ... 모르겠다, 모르겠어.
그 지잉 소리, 들리는 것도 같고, 안 들리는 것도 같고...
건반을 바르게 터치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그런 소리 ..?
아, 우리 피아노는 잘못이 없었던 거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