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하면서 찬 바람이 피부에 와닿는 11월이 시작되었다.
고즈넉한 저녁 퇴근길에 가로수길을 걷노라면
차가운 바람에 낙엽들은 떨어져 이리저리 나 뒹군다
찬 바람이 불어와 을씨년 스러운데 도로 한 귀퉁이에 쌓여있는 메마른 낙엽들을 보노라면
저물어가는 계절, 가을이 다가오니 자꾸만 쓸쓸해지고 지난 세월들의 아련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보잘것없고, 평범한 시골 농촌에서 소작농을 하는 소박한 부모님 슬하애 4남 3녀가 태어나 성장하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 누나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여동생은 중학교만 졸업 후 대도시인 부산과 서울 구로공단에서 액자를 만드는 표구사와 콘크리트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남보다 빨리 자립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었다.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면서, 주경야독했던 탓인지 다행히 고등학교 졸업장은 받았다.
이렇게 우리 7남매는 많이는 배우지 못했어도 회사생활과 타향살이를 하면서 열심히 살아왔으나 누나는 50대 초반에 암으로 돌아가시고,
살아있는 남동생 두 명도 결혼도 하지 않은 20대 후반에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너무나 빨리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이렇게 갑자기 3남매가 부모님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리니 어머님은 정신을 잃고 먼산만 바라보시면서 매일 누나와 동생들 이름을 부르시다가 결국에는 가슴에 한이 맺히셨는지 2016년 추석전날에 먼저 떠나버린 3남매 곁으로 가셨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다닌 직장과 친구 지인들은 부모님 회갑잔치와 칠순 팔순잔치를 하는 게 효도라고 생각했던 탓 인지 효도잔치가 대 유행이던 시절도 있었다.
남들은 부모님께 효도잔치를 다 하는데 우리 3남매가 먼저 떠났다고 마냥 슬픔에 잠겨, 부모님을 위한 잔치를 하지 않으면 평생 동안 막심한 후회가 될 것 같아 어머님 생존해 계실 때 칠순잔치라도 한번 하는 게 후회가 없을 것 같아 20년 전 낙엽이 다 떨어져 바람에 휘날리던 늦가을 11월 어느 날 금요일 저녁에 직장에서 퇴근을 하면서 많은 직원들이 퇴근 후 술과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오목교 근처 청학뷔페를 예약해 사랑하는 어머님을 위한 칠순잔치를 해 드렸다.
부모님을 모시고 자녀들이 다 같이 앞으로 나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사회를 보는 사회자에게는 아들 딸 소개하지 말고 그냥 자녀 동시 입장으로 행사를 진행하라고 신신 당부 했었다.
괜히 큰딸, 큰아들 둘째 등 차례대로 소개를 시키면 먼저 가버린 3남매들이 보고 싶고 그리워서 어머님이 통곡해 울면 칠순잔치 연회장이 엉망이 될까 봐 자녀들 소개는 생략하고 음악과 분위기를 띄우면서 행사를 진행했다.
금요일 주말 오후 퇴근길이어서 정신적으로도 부담도 되지 않아 마음이 편안했던지 500여 명의 직원들이
참석하여 노래를 부르고 제 어머님을 등에 업고 둥실둥실 춤을 추면서 축하를 해줘 부모님께는 효도를 할 수 있어 참석한 동료 직원들에게 고맙고 감사했다.
이제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과 즐거운 추억이다.
이제는 부모님도 별세하시고 계시지 않지만 20년 전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님과 아버지 칠순잔치를 동시에 해 드린 게 너무너무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