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D-2
짙게 깔린 어둠을 뚫고 매주 금요일마다 청소년 강의를 나서는 길
무심코 열은 창문으로 매섭게 들어오는 바람에서 봄이 느껴져 낯설었다.
무거운 공기가 아침 출근길과 퇴근길을 짙게 메우던 겨울이 어느새 저만치 멀어지고, 봄이 찾아왔다.
나는 경칩의 개구리마냥 회사를 뛰쳐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월요일 오후 6시, 바쁜 업무가 있어도 월요일을 버텨낸 나에게 주는 선물이란 생각에 서둘러 퇴근길에 오르는 직원들.
그들을 퇴근길을 배웅하고, 적막만이 남은 사무실을 지키며 조용히 책상을 정리했다.
생각보다 켜켜이 쌓인 먼지들을 물티슈로 닦아내고 조금의 흔적이라도 남을까 꼼꼼히 살폈다.
슬프거나 아쉽지 않았다.
다만 겨우내 안락했던 직장생활을 저만치 밀어내고 땅 속을 박차고 나온 원대한 농사의 꿈의 종착지가 과연 어디일지.
행여 다시 온실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까 직장 옆 자리잡은 자취방도 미련없이 정리를 시작했다.
몇 개의 박스가 필요할까 머릿속으로 그동안의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톺아보았지만, 막상 꺼내기 시작한 살림들은 단칸방에서 증식이라도 한 듯 한 차로 싣고 가기엔 너무도 방대했다.
죽자사자 고되게 이어왔던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다 흘러내린 야근의 흔적이 손에 닿았다.
개인정보나 민감한 내용은 없는지 확인 후 종량제 봉투 깊숙한 곳에 밀어넣었다.
자취방 건물 주인은 연로하신 부부였다. 인터넷으로 물건 주문하기도 문턱이 높아 차마 시도하지 못하셨던 건물주 내외 분께서는 늘 내게 물건 구매를 부탁하셨고, 그때마다 망설임없이 도움을 드렸다.
계약기간을 지키지 못하고 퇴거하는 마음이 죄송해 연신 죄송한 마음을 표했는데 그때마다 너무 마음쓰지말라며 최선을 다해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보겠다며 발벗고 나서주셨다.
떠나기 준비 완료.
이제는 꽤나 길어진 낮의 창 밖으로 비치는 봄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