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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 Apr 12. 2024

제주야 나 좀 치유해줘   

외치는 용기, 자연이라는 안정제


 효리네 민박으로 유명해진 애월은 그 유명세와 다르게 매우 한적한 곳이다. 

치유를 위해 제주에 내려온 지 이제 한 달 되는 날 오늘은 카페를 가기 위해 차대신 걷기를 선택했다. 좁은 골목들을 지나면서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웠고 양옆에 펼쳐진 풍경은 브로콜리 밭이었다. 서울에서와 다르게 이렇게 시야가 단조로울 수 있구나. 그 단조로움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나를 쪼고 있던 긴장감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할때즘 큰 길가가 나왔고 길가 건너에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있었다. 와_ 너무 근사하다. 


 큰길에 나오니 종종 지나가는 차들이 있었고 나의 내면에는 야호를 외쳐보고 싶은 생각이 꿈틀꿈틀거리고 있었다. 여자혼자 길에서 야호를 외친다면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혹시 날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어떡하지? 야호라는 그 두 글자가 왜 이리고 힘을까. 난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습에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대항할 수 없는 드넓은 바다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용기를 내, 야호를 외쳐봐


 마침 살짝 안으로 들어간 길목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지나가는 차가 나를 잘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곳에 바다를 마주 보고 당당히 서서 어깨에 힘을 빼고 두 손을 얼굴 쪽에 올려 생에 처음으로 야호 ~~~~~! 를 외쳤다. 한번 아니 두 번을 외치고 나니 나에게 꼭 맞는 안정제 하나를 먹은 듯 속이 후련했고 그래, 난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이 들어왔다. 


그래 난 치유할 수 있어. 난 더 건강하고 원하는 내가 될 수 있어. 그리고 지금도 난 충분히 괜찮아! 외치는 용기를 한번 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울림이 있다고?! 난 그 이후로도 차 대신 걷기를 택했고 이곳에 들려 야호를 몇 번 외치기 시작했다. 



 자연은 나에게 어떻게 용기를 줬을까. 

어쩌면 그 드넓은 바다와 계절의 말 못 할 변화무쌍함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내는 강인함과 봄이 되면 다시금 생기를 일으키는 새싹들을 보며 깨달음과 위로를 느낀다. 그리고는 내심 나 자신에게 미안해진다. 사실 봄이 되면 다시 나오는 새싹들처럼 나 또한 큰 생명력을 지닌 살아있는 존재였는데 내가 너를 너무 돌봐주지 않았구나, 내가 너를 너무 메마르게 놔뒀구나라는 마음에 뭉클해진다. 하지만 다시금 나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고 아껴주고 이뻐해 주겠노라 약속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한다. 

폐쇄적인 생활습관과 생각습관을 반성한다.

바꿔야 한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나를 위해, 나의 삶은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제주라는 곳은 이런 자연을 늘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고 자연의 생명력을 언제나 느낄 수 있다. 자연의 생명력을 느낀다는 것은 세계 최고의 신경전문의가 처방해 주는 안정제보다 훨씬 큰 안정제이다. 나의 치유에는 이 안정제가 가장 필요했고 특효약임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제주에 내려온 나의 선택은 정말로 날 위한 선택이었음을 다시금 느끼곤 한다. 자연의 흐름에 맞추는 삶. 그것이 제주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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