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회복탄력성 수업] 게일 가젤 지음
2024년도 한 해 동안 내 인생에 가장 심한 감정의 곡선을 탔다.
태어나서 가장 가난한 순간도 겪어보고, 우울의 골짜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 거렸다.
새해가 되었음에도, 여느 해와 달리 기쁘지 않았다.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자기계발이라 이름 붙인 공부를 하고, 억지로 만들어낸 취미생활을 하며 꾸역꾸역 어둠의 터널의 나를 밖으로 꺼내는 것이 힘들었나보다. 너무 지쳤나보다.
변하지 않는 상황, 그리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손을 떠난 상황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좌절했다.
하지만 살아가야 하기에, 슬금슬금 들어가버린 진흙과도 같은 괴로움에서 나를 끌어내 보았다.
온 힘을 다해 꺼내고 나면 어느새 다시 깊이 빠져버린 발을 한 쪽씩 꺼내기를 일 년.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동기부여와 격려로 끌어내길 일 년.
이제는 또 다시 지쳤나보다.
밤새 유투브를 보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잠들고, 오후 즈음에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기를 며칠.
폐인처럼 눈 뜨기도,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기를 며칠.
사람 만나는 것도 멀리하고 살던 중 어쩌다보니 강제로 잡힌 약속에 몸을 이끌고 나간 어느 날, 우연히 '하버드 회복탄력성 수업'을 추천받았다.
알바를 하러 간 다음 날, 그 날 따라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터라 아이패드를 꺼냈다.
전 날 추천받은 책을 전자도서관에서 검색하고 멍하니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막중한 책임감과 강도 높은 업무 환경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번아웃에 빠진 의사들을 상대로 회복탄력성의 원리'를 적용해보고 그 내용을 책으로 옮겼다.
마침, 몇 달전에 "얘는 회복탄력성이 좋아" 라고 말하던 삼촌이 떠오르며, 순식간에 책을 읽어갔다.
우리 삼촌이 칭한 '얘'는 삼촌의 딸이자 나의 사촌동생이었는데, 참 재밌는 친구였다.
시험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한 번도 못봤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한다.
"몰라, 못 봤으면 다음에 더 잘보면 되지, 일단 아는대로는 다 풀었으니까 잘 본 것 같아"
매 번 이렇게 말한다는 내 사촌동생. 실제로 고등학교 1학년 때 시험을 망친 적이 있는데, 본인이 어떤 점이 부족해서 못 본 것 같다고 얘기하고 바로 다음 시험부터는 또 잘 해냈다고 한다. 사촌동생이 쿨한 척 말하지만, 책임감 없는 학생은 아니다. 외고에 입학하고, 지금은 명문대를 합격해서 신나게 놀고 있을 정도로 잘하는 친구다.
회복 탄력성이란, 좌절할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나는 힘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회복탄력성은 인생의 다양한 측면과 연관이 있었다.
1. 유연성
'관점을 바꾸면 사고가 유연해진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이 두 가지가 유연성과 회복탄력성의 핵심 문장이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자기 조절하는 것.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앞에 보인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발견하고 상황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것. 이 두 가지가 스트레스에서 나를 꺼내는 힘이 된다.
2. 끈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상황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쳇바퀴에서 계속 맴돌기 때문에 끈기를 가지고 나아갈 수 없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데에서 앞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된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상황에 매몰되고, 상심하며 끝없는 비관의 고리를 맴돌게 된다. 현실을 직면하는 것은, 인생이 셀 수 없는 선택으로 가득하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다 나은 선택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3. 긍정성
'내면 비판자는 오랜 세월 타인으로부터 들은 비판의 목소리가 층층이 쌓여 고통스러운 합창이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목소리가 익숙해져 나의 목소리라고 착각한다'
'비관주의자는 가능성이 있어도 개선될 수 없다고 믿는 '학습된 무기력'에 갇히고 만다'
스스로를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쇼펜하우어에 공감하는 내가 가장 와닿았던 부분이다. 100가지 중 97개를 잘 해냈더라도, 해내지 못한 3개의 일에서 들은 비판을 나는 기억했다. 어쩌면 누군가는 가볍게 던진 비판의 화살이더라도 내 가슴에 깊이 박혀 끊임없이 나를 갉아먹었다. 이 책에 나와있듯이 내면의 비판자가 악마의 편집으로 자기 멋대로 짜깁기한 장면들은 사실을 왜곡한다.
다음 챕터인 <자기 공감> 부분에서, '내면 비판자가 마음의 가해자가 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내면 비판자에게 놀아난 뇌와 마음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 상처가 나게 된다.
지금은 고통의 순간이야. 힘이 들어 누구라도 내가 겪는 일을 겪으면 이런 느낌이겠지.
이 순간 나 자신을 배려하고 싶어. 나도 불완전한 인간들 사이에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야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고,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여 나아가면 그 뿐이다.
4. 자존감
자존감, 스스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종종 타인에게는 관대하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유형의 관대는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친 자신이 번아웃과 탈진으로 이어지게 한다.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 도입부를 새롭게 쓸 수는 없지만, 엔딩은 얼마든지 새롭게 쓸 수 있다.'
책의 마무리에 써있는 구절이다.
그렇다. 실패한 과거를 끊임없이 반복 재생하며 자기 비판을 일삼고 내면 비판자의 만행을 내버려두는 것은,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한 발짝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출발선만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는 것과 같다.
어쩌면 나도 그래서 또 다시 지쳐버렸는지도.
일 년이라는 기간 동안 힘내려 노력했던 내 자신 수고했다.
잘했어. 넌 최선을 다한거야.
힘들면 조금 쉬고, 나아지면 한 걸음 가보자.
오랜만의 완독으로 새해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