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플, 날아가기 위한.
골프공에 있는 작은 홈들을 '딤플(Dimple)'이라고 한다.
딤플은 매끈한 표면을 가진 탁구공과 달리 표면의 공기 저항을 줄인다. 또, 공이 회전을 할 때 더 오래 떠있을 수 있게 하고, 튀는 방향이 불규칙해지지 않도록, 속도와 방향을 더 일정하게, 더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날아가도록 한다.
이번주는 참 힘들었다.
나란 사람은 기분 좋아도 먹고, 슬퍼도 먹고, 화나도 먹는 사람인데, 이런 내가 입맛이 없더라.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라는 말이 뭔지 와닿은 며칠이었다.
왜 나는 모든 것이 쉽지 않을까. 괜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힘들었던 순간들을 어쩌다보니 모두 알고 계신 오랜 인연의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입시도, 대학교 입시도, 원하던 직업을 얻게된 지금도 뭐 하나 스무스하게 넘어간 적이 없다. 매번 우여곡절을 겪고, 돌아돌아 목표에 도달했다. 연애도, 이별도, 결혼도 참 나에게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자연스럽게 만나고 자연스럽게 헤어진다는 말이 있던데, 나는 이해가 안된다. 다시는 이별이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힘든 이별을 겪고 나니 말이다.
사실 결과적으로는 내가 원하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소위 말하는 '명문고'에 입학했었고, 원하던 직업을 얻게 되었으니, 누군가가 보기에는 '결국 다 했잖아.' 싶을 수 있다. 딱히 힘든 일을 터놓지도 않는 편이라 별 생각 없이 이것저것 해보다가 됐나보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선생님께 억울하다고 이래저래 털어놓으니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하더라, 자기 인생만 억까당하는 것 같다고. 근데 내가 봐도 너는 객관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아. 그런데 그건 너가 목표가 조금 더 높아서 그런 것 아닐까?" 하셨다. 물론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란 인간은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정말 많이 힘들고, 스스로를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뭔가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다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보다. 지금 또 이러고 있는 걸 보니.
내 친구의 말처럼 '내 인생에 참 깊이 남을 장면'이 될 이번주.
아빠랑 통화하면서 또 한번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고 털어놓으니 아빠가 얘기해준 골프공의 '딤플(Dimple)'.
탁구공은 매끈해서 짧고 빠르게 이동가능하지만 그만큼 회전이 많아 궤적이 변하기 쉽다. 골프공은 울퉁불퉁한 딤플이 가득한데, 정확하고 멀리 날아갈 수 있다. 삶에서 힘든 순간들을 어렸을 때 여러번 겪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길고 멀리, 차분하지만 정확하게 날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매끈하고 빠른 탁구공이 부럽고 억울하겠지만, 인생 길다고, 너는 골프공인거고 더 멀리 정확하게 날아가려는 과정일 뿐인거라고.
내시경을 마치고 헤롱한 상태의 아빠와 나눈 짧은 통화에서 예상치 못한 위로를 얻었다.
맞아. 나는 골프공인 것 뿐이야. 탁구공을 부러워하면서 세상에 화내지 말자.
세상엔 탁구공도 있고, 골프공도 있는거지. 나만의 길을 차분하게 정확하게 한 걸음씩 잘 걸어가기 위한 나의 방식이 있는거겠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