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찾는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무기력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맸다.
왜 사는걸까, 뭐 때문에 내가 살아가야 하는 걸까
반복되는 이 질문들의 결론은 또다시 무기력으로 이어졌다. 결국 모두 죽기 전까지 존버하면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일까. 삶의 이유나 의미는 없어보였고,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 것, 죽지 못해 사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한 해 동안 나에게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랑도, 가족도, 일도 받아들이기에 참 쉽지 않은 변화들이었다.
꽤 오랜 기간 백수 생활을 하며 인생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나는 사랑을 끝내기로 마음 먹었고, 가족들의 짐을 억지로 지지 않기로 했다. 복잡한 생각들과 우울함으로 가득찬 나는 벗어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이라도 읽으면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는 나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독서를 하는 동안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덜 들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과 우울이 찾아오면, 나와 같은 고민을 지속해간 철학자들의 책을 찾아 읽곤 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간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 보고 있자면 한편으로 위로가 되기도, 어떤 부분에서는 해답을 찾기도 했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간 지금, 오랜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나는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
한동안은 적응의 기간이라 정신이 없었고, 이직을 하며 또 다시 적응의 기간을 가졌다. 이런 변화들의 시간을 겪는 동안 현실이 바빠 잠시 미뤄두었던 생각이, 이제는 익숙해진 일들과 시간 속에서 스멀 스멀 밀고 올라왔다. 일이 힘들었던 초반, 오프날은 꿀 같은 휴식날이라 한없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즐거운 쉼의 시간이었다. 요즘 나의 오프는 무기력과 우울, 고민과 눈물로 가득찬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이제 정말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문득 문득 생각나는 지난 사랑, 그리고 힘들 때면 안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연락하라는 그 마지막 말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30살이나 나이를 먹고도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지 못하고 자꾸만 기댈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정신 없이 바쁜 출근 날에는 생각도 나지 않는 지난 사랑이 왜 오프날만 되면 이렇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기분전환 겸 들른 카페에서 내 앞에 앉은 사람이 줌으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그가 떠올라서 눈물이 났다. 미사와 성서모임을 앞두고 멈추지 않는 눈물을 겨우 훔쳐내며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미사에 갔다. 영성체를 모시고 기도 드리는 시간에 나는 눈물을 있는 그대로 쏟아 냈다. 느껴지는 마음 그대로 흘려내고 기도 드렸다. 이 시간을 잘 이겨내고 버텨낼 수 있기를.
1) 소개팅
우울에 빠져 있는 내 모습이 싫어서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도 하고, 몇 년만에 소개팅도 해보았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헤어진 사람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날이면 여전히 집에 돌아오는 길은 씁쓸했고, 즐거운 얘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마음 한 곳이 헛헛했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는 친구의 말에 소개팅도 받아 보았다. 고작 2번이었지만 소개팅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매번 펑펑 울었고, 애프터를 모두 거절했다. 평소에 입지도 않는 불편한 블라우스를 입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궁금하지도 않는 것들을 쥐어짜내 물어보고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나에게 너무 버거웠다. 너무나도 힘이 드는 일이었고, 집에 돌아오면 진이 빠지고 그들과 나눴던 대화를 복기하며 지난 사랑과 비교를 하게 되더라. 썩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였을까, 고작 2번의 소개팅이었지만, 더이상 소개팅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애프터를 모두 거절한 날, 소화제를 먹은 것 마냥 마음이 편안해졌다.
2) 폭식
일을 처음 시작하고 첫 2주동안 10kg이 그냥 빠졌다. 딱히 운동을 한 것도 식단을 한 것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꽤나 힘든 과정이었나보다. 두 달정도 빠진 채로 유지되던 중 나는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직 환경은 지난 직장보다 체력적으로 훨씬 편한 곳이었고, 오프 날에 마음이 헛헛하다는 이유로 음식으로 채우려 했던 것 같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배가 찢어질 듯이 부르고, 머리가 멍해져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음식을 밀어 넣었다. 아마 빠진 살이 다시 쪘는지도 모르겠다. 몸무게를 재진 않았지만 몸이 부어있는 느낌은 매번 들었다. 살이 찌니 몸이 다시 불편해졌고, 짜증과 우울이 또 반복되었던 것 같다. 한 2주 정도 폭식을 반복하다보니 어느날부터 다시 배가 고프지 않았다. 먹을 만큼 다 먹어서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3) 운동
마음이 많이 버거웠던 어느 날 유일하게 터놓을 수 있는 친구와 몇 시간을 떠들었다.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요즘 내 마음을 털어 놓기도 하고 시덥잖은 얘기도 하다보니 친구가 골프를 추천했다. 새로운 운동을 배워보면 마음이 좀 나아질거라고, 한국오면 같이 치러 가자고 하면서,,, ㅎ 그렇게 나는 충동적으로 골프와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시작한 운동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골프는 나를 더 짜증나게 만들었다. 가만히 있는 공을 치는데 자세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았고, 머리와 하체는 고정한채 상체만 회전시키는 그 동작을 완성시키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점점 화가 나더라. 그 와중에 처음 선택한 골프 선생님은 말을 툭툭 내뱉는 사람이라 안그래도 작아진 나를 더 작아지게 했다. 이러다간 돈 날리고 골프 레슨도 안가겠다 싶어서 나는 골프 선생님을 바꿨다. 바꾼 선생님은 나의 사소한 질문들에도 친절하고 정확하게 답변을 주시고, 잘한 부분과 부족한 부분들을 얘기해주시며 발전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덕분에 짜증나던 골프에는 조금씩 흥미를 가졌고, 필라테스로는 그동안 굳어 있던 몸과 풀려있던 코어를 잡는 동작을 통해 말 그대로 중심을 잡아가게 되었다. 오프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져있는 날이더라도 예약된 골프 수업과 필라테스를 가기 위해 한 번은 집밖에 나가게 되었고, 그렇게 2주를 보내다 보니 이제 다시 책상 앞에도 앉게 되었다.
이렇게 올해 상반기의 나의 마음과 생활을 적어보자니,
잔잔한 물 위에 나는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끊임없는 몸부림 중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몸부림을 끝내고 천천히 또 다시 흘러가기 위함이겠지.
삶의 의미를 찾던 나에게도 작은 해답이 찾아왔다.
삶의 의미는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만들어가면 되는 것, 내가 만들어가는 하루하루가 쌓여 나의 삶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정해져 있는 답이 있는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게 답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