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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han Mar 23. 2024

16.미국 문화 그리고 직장 적응기

16. 응급실에 가다

일을 한참 하던 중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애가 열이 난다고 해서 집에 데리고 왔다. 열이 심하게 나지도 않고 낮잠 시간이 되어 아이를 침대에 놓고 나는 일을 계속했다. 매번 애가 아플 때마다 아이를 진료받게 할 것인지는 사실 큰 고민거리이다. 많은 경우 데려가도 '감기이니까 타이레놀 정해진 시간에 주세요'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갈 때마다 보통 이삼십 불을 낸다. 돈은 보험으로 인해서 얼마 안 되는 것이지만 전화해서 예약을 잡고 회사에서 시간을 내는 것이 생각보다 꽤 많은 노력이 든다.


그렇게 그날 괜찮아 보였던 아이가 오늘따라 크게 울기 시작했다. 미국 스타일의 육아는 좀 울어도 어느 정도 내버려 둔다. 한국은 아이를 안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는 아이를 크립에 두고 울다 잠들게 한다. 그렇게 버릇을 들이면, 잘 시간이 되면 아이가 스스로 크립 앞에 가서 안에 눕혀달라고 나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시간이 좀 흘렀는데 아이가 포기를 안 하고 운다. 결국 내가 포기하고 아이를 안았다. 아이가 울다가 지쳤는지 내가 안자마자 눈을 감았다. 하지만 편하게 잠드는 것이 아니라 계속 칭얼댔다. 애가 울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파서 그런 건지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다니던 소아과에 전화를 넣었다. 이때만 해도 큰 걱정 없이 진료 받아두는게 좋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연락한 것이었다. "지금 시간 비는데 바로 오실래요" 잘 됐다. 빨리 하고 돌아오면 되겠다. 회사 개인 달력에 시간을 블락하고 소아과로 향했다. 의사는 아이를 보더니 간단한 검사를 했다. 열은 많이 안 나지만 산소 포화도를 보더니 걱정스런 눈빛을 보였다. '뭐지 단순 감기가 아닌가' 의사는 자기가 지금 전화를 넣을 테니 큰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 조그만 노트를 써줬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뭐지 갑자기 왜...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잠시 미국 응급실에 대해 얘기하자면, 갑자기 아플 때는 응급실에 가는 것이 지만 만약 그것이 실제 응급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책임 진다는 말은 그에 맞는 비용을 지불한다는 뜻이다. 별 것 아닌 일로 응급실에 갔다가는 보험이 있더라도 큰 bill을 병원으로부터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아프다고 해서 응급실에 갔지만 진료 또는 테스트 끝에 만약 응급실 의사가 판단해서 응급이 아니니 가서 주치의를 먼저 만나고 오라는  답을 듣는다면 비용을 지불할 준비를 해야한다. 또는 응급실에 들어가서 어떤 치료를 받았다고 해도 나중에 봐서 그것이 응급 사항이 아니었다면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왜냐면 보험 회사에서 비용지불을 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의 지불거절은 상당히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보통 doctor's office에 먼저 가고 거기서 먼저 소견서를 받고 큰 병원에 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식으로 책임을 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명확히 응급상황이면 바로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공황장애 같은 상황이면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대 앞에서 난 빠르게 아내에게 문자를 넣었다. 아이가 숨 쉬는 것 힘들어해서 응급실 왔어라고, 아내는 지금 바로 갈게 하고 답을 줬다. 응급실에서 접수하는 사람이 너무 느려 답답했다. 나는 의사가 써준 노트를 넘겼고 그제야 좀 빠르게 전화를 넣더니 간호사가 나와 우리를 급하게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정신없는 검사들과 함께 이것저것 아이에게 조치를 취했다. 한 의사가 나에게 오더니 아이가 숨 쉬기를 힘들어한다. 어떤 약을 썼으니 상황이 좋아지나 지켜보자 만약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아이가 숨쉬는 것을 스스로 포기할 수가 있다. 그 때는 관을 삽입해야 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 사이 아내가 도착했고 난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가 있는 방으로 온 소아병원의 의사들이 들어왔다. 분명 그 때 당시 의사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방이었던 것 같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며 너무 미안했다. 열난다고 할 때 바로 의사를 보러 갈걸.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늦었다. 처음으로 아이를 잃을까 봐 두려웠다. 다행히 약이 효과가 있었고 관을 삽입하는 데까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산소 공급하는 장치를 얼굴에 하고 팔에 링거를 꼽은 채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며칠간 중환자실에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악몽은 지나갔다. 왜 몰랐을까 작은 감기 증상도 영아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그 이후로는 단순히 기침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아이가 숨 쉴 때 배가 얼마나 움직이는 지도 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소중함을 배웠다. 평소에는 단순히 회사에서 몇시간을 내는 것이 어려웠는데 막상 응급실을 가게 되니 그런것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들이 좋은 회사와 연봉을 말하고 돈을 말해도 막상 누워서 눈을 감으면 내게 주워진 것은 그냥 침대 하나일 뿐이다. 그 곳을 같이 나눌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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