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주세법이 달라 평소 부담스러운 가격대의 위스키들을 보다 저렴하게 만나볼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발렌타인 30년'이나 '조니워커 블루' 등의 할인율이면 항공료가 무료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나는 내가 마실 용도로 가성비 좋은 버번 위스키 '에반 윌리엄스 12년'과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마실 스카치 위스키 '조니워커 블루'를 한 병씩 구매했다.
여행 짐을 풀면서 생각해 보니, 30년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이렇게 비싼 선물을 구입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은 5만 원 이하"라는 심리적 저항선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만 4년이 되어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긴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간 가지고 있던 심리적 저항선을 상회할 만큼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이 곁에 많아진 덕분인 듯하다.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무기력한 사람이다. 어렵게 목표를 세워도 실천이 느리고, 작은 변화에도 에너지가 쉽게 고갈되어 제자리 걸음하는 일이 잦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내 주위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일주일, 한 달, 또는 일 년 단위로 목표를 세분화하는가 하면, 한 번 계획한 것은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실행하며, 순간의 상황판단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내게도 좋은 자극이 되고, 혼자 가만히 있자니 괜스레 눈치가 보여 나도 내 삶을 가꾸어 나가게 된다. 그들 덕분에 바뀐 마음가짐과 행동을 수치적으로 정량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값어치가 결코 위스키 한 병 보다 작을 수 없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위스키 구매 당시 손이 살짝 떨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받은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단순히 순간의 지출에 망설였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미련한 마음 탓에 실수하지 않기 위해 기록으로 남긴다.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고마움도 그렇다. 그리고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은 상대방뿐만이 아니다. 나 자신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고마웠던 마음이 표현되지 않으면 휘발되어 잊혀진다. 그런 고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아야겠다. 상대방을 위해서도, 내 염치를 지키기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