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야기(四月物語)_이와이 슌지>
어김없이 4월이 찾아왔고, 올해도 가장 사랑하는 영화를 꺼내 보았다.
우즈키처럼 낯선 환경으로 독립한 나에게 올해의 <4월 이야기>는 조금 더 특별한 한 시간이었다.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홀로 상경한 대학 신입생 우즈키(마츠 다카코)에게 모든 것은 낯선 처음의 연속이다.
첫 독립, 첫 동아리, 첫 친구, 첫 이웃. 모든 것이 어색하고 무섭지만, 이내 조그만 설렘과 두근거림도 함께 다가온다.』
일본은 보통 4월에 입학식을 갖는다. 아직 꽃샘추위가 있는 한국의 3월 입학 시즌과는 달리, 벚꽃이 피는 이 시기는 일본인들에게 따뜻함 속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처음'과 '첫 시작'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감정이 내포된다. 보통은 설렘과 두려움이 큰 축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어떠한 처음에는 기분 좋은 설렘뿐일 수 있고, 어떠한 처음에는 두려움과 망설임이 발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처음은 이러한 설렘과 두려움을 모두 갖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설렘의 감정이 더 메인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두려움이 더 메인일 수 있다. 예컨대 걱정이 많은 나에겐 설렘뿐이었던 적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설렘이 찾아와 몽글몽글한 감정으로 가득 차더라도, 이내 '걱정'과 '두려움'이 설렘의 자리를 조금씩 차지하곤 했다. 두려움이 커 많은 시작을 망설이며 관두기도 했고, 뒤이어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을 준비하고, 첫 발을 내디딜 때의 기분은 어쩌면 삶을 이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줬다.
이는 짝사랑을 할 때 쉽게 볼 수 있었다. 처음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겼을 때, 단번에 몽글몽글한 설렘에 휩싸인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미소 지어지고,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고, 한 번이라도 더 연락하고 싶어진다. 이 시기의 설렘이라는 감정은 오늘과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고, 하루 종일 상대방과의 순간을 회상하고 상상한다. 또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를 꾸미게 되고,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후에 내가 왜 그 사람을 좋아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삶의 원동력을 갖기 위해, 혹은 그 설렘의 감정을 갖기 위해 항상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 진심이었다.
하지만 항상 그 설렘의 감정 속에 걱정과 두려움이 피어났다. 나에게 호감이 없어 보이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시했다가 지금의 관계를 깨버리지 않을까, 너무 섣부르게 다가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걱정들로 가득 차버린다. 그래서 상대방이 확실한 호감 표시를 하지 않는다면, 걱정 지옥에 빠져버렸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버렸다. 물론 어쩌면 그 선택이 잘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몇몇의 인연이 그냥 지나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후에 나의 이러한 애매모호하게 보이는 태도에 감정이 시들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앞서 말했듯, 걱정이 많은 나에겐 이처럼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항상 큰 두려움이 앞을 가로막았다. 요즈음 이 감정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 두려움과 걱정으로 인해 나는 많은 도전 앞에서 멈춰 섰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는 게 정답이었던 적도 있을 것이다. 나는 단 한 번의 실패를 무서워했고, 그 실패 하나에 계속해서 후회하고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때 도전하지 않고 나아가지 않았던 것이 더 후회스러운 선택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어쩌면 마치 두발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같다. 중국 어학연수 시절, 기숙사에서 음식점이 몰려있는 동문까지는 도보로 30분이 넘었고, 이로 인해 캠퍼스 내에서는 꼭 자전거를 타야 했다. 초등학교 이후로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던 나는 역시나 다치는 것에 걱정이 많았고, 다른 동기들에 비해 며칠 머뭇거리다 불편함에 도전을 했었다. 처음 이틀간은 옆으로 쌩쌩 지나가는 전기 오토바이 사이에서 크게 긴장이 됐고, 자전거에 탑승해 첫 쳇바퀴를 굴릴 때엔 방향이 잘 잡히지 않아 화단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빠르게 달리기도 하고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 타는 등, 금방 숙련이 될 수 있었다. 매일 탔던 자전거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고 중국 생활에서 가장 큰 재미이자 추억이 되었다. 이후에도 자전거를 타기 위해 중국에 몇 차례 더 여행을 가기도 했다.
물론 또 다른 한편으로, 어쩌면 도전하지 않았던 몇몇의 선택이 옳았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동기 한 명은 상대방의 부주의로 인해 자전거를 타다 크게 다친 적이 있다. 이처럼 아무도 모르는 미래에 있어 조심하고 망설였던 것이 오히려 그 안에서 에너지를 아끼고 여렸던 내 감정을 지켰을 수도 있다. 한번 혹은 몇 차례의 쉼이 중요한 선택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모을 수 있게 해줬을 수 있다. 사실 아직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이 문제를 생각하는 그 순간의 감정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어떤 때에는 그 선택이 옳았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가도, 무심코 감기처럼 후회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어쩌면 닦이지 않는 오래된 얼룩처럼 마음 한켠에 조금씩 쌓이다 조금 약해진 때에 갑작스레 얼굴을 내비치는 것 같다.
나에 대해 알고 있는 특성과 기질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으로 처음 하는 일에 서툴지만, 몇 번 해보고 익숙해지면 잘하는 편에 속하게 된다. 처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조심성이 많아 과감하게 시도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경우도 있고, 어쩌면 정말 남들에 비해 처음이 서툰 편일 수도 있을 것이다. <4월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게 된 이유는 사실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스무 살에 영화를 봤던 내가 영화 속 인물인 우즈키의 모습에서 이러한 나의 모습이 비쳐서였던 것 같다. 사람을 대할 때 아직은 어색하고 서툰 모습에, 그 순간에 우리는 소극적인 태도에 자책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게 나의 본연의 모습이고, 그 순간들의 나의 모습들이 지금은 대다수가 미소 지으며 회상할 수 있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첫 시작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작은 일일 수도 있고, 큰 도전 내지는 힘든 시기로의 진입일 수도 있다. 그 순간순간을 모두 응원하고 싶다. 걱정이 많아 망설이게 될 때, 조금 서툴 수 있어도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순간이 설렘의 감정이 메인일 수 있도록. 또한 그 순간에는 힘들었더라도 나중에는 미소 지으며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결국 발을 내딛지 못했더라도 안아주며 위로하고 싶다. 아직도 혼란스러운 나를 위해서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겐 핑계로 보일 수 있더라도, 우린 어쩌면 이보 전진을 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