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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하나 Jun 04. 2024

기억되는 것

<모과_백현진>, <하나와 앨리스(花とアリス)_이와이 슌지>


모과(Unreleased)_백현진



"여느 때처럼 평범한 밤이었어 

우리 둘은 공원에 있었지 

매우 낡은 정자에 누워서 

눈을 감고 밤의 소리를 듣네 

그때 모과 냄새가 소리 없이 흐르네 

그 냄새는 점점 강해지더니 

모과 냄새 서서히 진동을 하네 

그러더니 온 사방에 모과 냄새 퍼지네 

모과 냄새 그 냄새에 온통 맛이 가네 


한순간 우리 다소 과장하면 

한순간 정말 모과만 있으면 

한순간 완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네 

다 필요 없고 모과와 너만 있으면


그땐 정말 찐득한 불안이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

그때 네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아직 기억이 나"






기억된다는 것



<모과>의 가사 속 화자는 여느 때와 다름없던 평온한 일상 속에서, 어디선가 흘러오는 모과 냄새를 인지하게 되고, 그 모과의 냄새가 더 뚜렷해졌을 때, 상대방에게서 한순간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그 특별했던 순간은 다시 모과 냄새라는 매개체를 통해 당시의 '찐득하게도 불안했던' 감정과 자신을 바라보던 상대방의 눈빛을 떠오르게 한다. 모과 냄새가 정말 여느 때와 다름없던 그날을 특별한 순간으로 변화시켜 주었던 시작점이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이미 특별했던 그 순간에 우연히 모과 냄새가 났고, 그 기억이 강렬했을 수도 있다. 어떠했던, 화자는 모과 냄새를 통해 그 당시와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매개체 속에 담겨지는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처럼 우리는 문득 어떤 계기나 매개체로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모과>에서처럼 어떤 냄새 혹은 향이라든지, 노래, 영화, 책, 사진, 장소에서부터 정말 작고 사소한 것까지 어떠한 매개체와 감각을 통해 당시와 그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예컨대 티비의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몇 해 전 영화를 보게 됐을 때, 우리는 무심코 그 영화를 봤던 당시와 순간이 떠오르게 될 수도 있다. 옆 좌석의 관객이 시끄러워 기분이 나빴던 작고 사소한 기억에서부터, 옆자리에 앉아있던 상대방과 그때의 설렘과 감정까지, 우리는 문득 그 당시의 상황과 순간, 감정이 떠오르게 된다. 그 한 영화에 우리의 기억이 저장되어 기억되고 있던 것이다. 우리는 이 기억을 떠올렸을 때, 애틋한 감정이 들 수도 있고, 다시 짜증이 날 수도 있으며, 오히려 그때와는 반대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예컨대 좋았던 그 순간이 지금은 기분 나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좋지 않았던 순간이 지금에 와서는 가볍게 웃음 지으며 넘어갈 수 있는 기억일 수도 있다.


특히 나에게는 음악이 주로 이러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음악과 앨범을 특정 기간 동안 몇 주에서 몇 달까지 계속 반복해 돌려듣는 나에게 그 음악은 그 당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후에 문득 다시 그 음악을 듣게 됐을 때, 음악을 듣던 그때의 감정과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예컨대 한 음악에서는 아팠던 첫 짝사랑의 기억을, 한 음악에서는 <모과>처럼 특별했던 상대방과의 순간을 사진처럼 떠오르게 해주고, 한 앨범에서는 힘든 시기에 앨범을 들으며 산책했던 곳의 거리와 분위기, 당시의 냄새와 감정까지 다시 떠오르게 해준다. 떠오른 기억은 다시금 설렘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조금 울적한 감정을 일으키게도 한다. 어쩌면 그 음악 속에 내 기억을 맡겨두고, 잠시 잊는 것일 수도 있다. 좋지 않은 기억이라면 떠오르지 않게 멀리 보내 버리고, 좋았던 기억이라면 후에 다시금 그 설렘을 느낄 수 있도록 잠시 서랍 깊은 곳에 아껴두는 것처럼.




서랍 속 가장 깊숙한 곳에서 무심코 발견하듯이


<4월 이야기> 다음으로 좋아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또 다른 작품인 <하나와 앨리스>에서, 아리스가와(아오이 유우 역)는 친구를 위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선배의 전 여자친구를 연기한다. 추궁하는 선배에게 지어낸 추억의 장소를 함께 다니며 끊어 내려 노력하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둘 간의 새로운 추억이 쌓이며 사랑의 감정이 피어나게 된다. 하지만 아리스가와는 결국 친구를 위해 선배에게 받았던 트럼프 카드를 돌려주며 마지막 헤어짐의 말을 한다.


아리스가와   서랍 속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둬. 언젠가 다시 그 카드를 발견하면 그걸 보면서 나를 떠올려 줘.

선배            날마다 발견할 거야.

아리스가와    그러면 안 돼.



하나와 앨리스 (花とアリス, Hana & Alice, 2004)



아리스가와는 선배에게 자신과의 추억을 트럼프 카드(A 하트)라는 매개체에 담아 건넨다. 그리고 그 트럼프 카드를 발견했을 때, 자신을 떠올려달라 말한다. 그리고 매일 발견하겠다는 선배에게는 그건 안된다고 말한다. 어쩌면 헤어짐을 결심한 아리스가와에게는 무심코 떠올려지는 기억이 추억으로서 그 순간을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게 담는 방법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헤어짐을 맞이하고 매일 떠올리는 기억은 추억이 아닌 미련이고 고통일 수 있다. 이사를 가기 위해 꺼낸 먼지 덮인 상자 속에서 옛 사진을 발견할 때의 감정처럼, 무심코 서랍을 열듯이 발견한 기억이 어쩌면 의식적으로 자주 생각하는 기억보다 더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기억의 조각 일부는 이미 우리가 아는 곳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곳 이곳저곳에 담겨 있을 것이다. 후에 발견될 그 기억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재미에서부터 가슴 떨리는 감정까지. 그리고 어쩌면 숨어있는 기억의 매개체들이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하게 보내고 있는 일상을 <모과>의 가사처럼 한순간 떠오르는 기억과 추억을 통해 그 순간과 하루를 특별하게 바꿔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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