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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하나 Jun 04. 2024

하고 싶은 걸 계속한다는 것

<태풍이 지나가고(海よりもまだ深く)_고레에다 히로카즈>, <길_god>



태풍이 지나가고 (海よりもまだ深く, After the Storm, 2016)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지금 당신은

당신이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대기만성(大器晩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의 주인공인 료타는 15년 전 문학상을 받은 이후로 이렇다 할 작품 없이 차기작을 구상만 하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나 그가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난 말이야, 대기만성형이야"라는 대사는 작중의 료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사이다. 생계에 쫓겨 사설탐정 일을 하고, 돈이 부족해 사이가 좋지 않은 누나의 직장을 찾아가 핀잔을 듣기도 하고, 어머니의 집에 찾아가 돈이 될만한 유산을 몰래 챙기려고도 한다. 양육비를 보내지 못해 아이를 볼 수 없을 지도 모르고, 아이가 원하는 미즈노를 제대로 사줄 수도 없지만, 그러고도 한방을 위해 경륜에 돈을 탕진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의 누나와 가족들, 그리고 작품 밖의 관객에게 료타는 그저 '대기만성형'이라는 무책임한 핑계를 대는 그저 과거의 영광에 빠져있는 철없는 인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큰 성과가 없는 예술 지망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오는 대사와 인물이었다. 나를 비춰주는 거울 같은 인물이었다. 학생 시절 촬영한 단편영화가 몇 군데 영화제에 갔던 나는 조금 더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기보다 다음 작품을 준비하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작년까지는 현실적인 생계 문제로 인해 돈을 벌기 위한 활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게 되었고, 점점 영화를 준비하고 글 쓰는 일은 뒷전이 되었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도 제대로 된 직장은 아니었고, 돈을 벌기 위한 알바들이었기 때문에, 료타처럼 누군가가 나에게 하는 일과 직업을 물어보면, 아직 졸업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남들에게서 나의 자존감을 보호해 주는 말인 동시에, 자신에 대해 한심함과 자책감까지 갖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래도 극 안에서의 료타는 아직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포스트잇에 극중 초반 "내 인생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여버린 거지"라 쓰며 한탄을 내뱉기도 하지만 아들의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라는 질문에 "아빠는 아직 되지 못했어. 하지만 되고 못되고는 문제가 아냐.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지"라 답한다. 어쩌면 아들에게 희망적인 말을 한 것일 수 있지만, 어쩌면 료타의 가슴속에는 아직 꿈을 향해 더 나아갈 힘이 남아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은 그저 큰 태풍이 지나가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저 안전한 곳에서 '포볼'을 기다리며, 맑게 해가 뜨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과 '생계' 사이의 균형



최근 국가지원 사업에 면접을 보게 됐었다. 청년을 위한 지원이었고, 공통질문 중의 하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에 있어서 힘들었던 점'이었다. 마침 이 주제의 글을 기획하고 있었던 나의 대답은 '하고 싶은 것'과 '생계' 사이에서 몇 년간 고민을 하고 있었고, 조금씩 밸런스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답이었다. 하지만 사실 아직 그 밸런스에 대한 정답은 찾지 못했다. 


학교를 마치고 1년간은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올해 1월까지 근 2년간은 돈을 버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일을 나갔고, 밤늦게 돌아와 조금의 휴식 후에 바로 잠에 들어야 했었다. 어쩌면 의지가 부족하고, 핑계로 보일 수 있지만 자기 전과 쉬는 날은 그저 침대에 누워 쉬게만 됐었고, 이로 인해 항상 일을 그만두고 영화를 준비하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쉽게 돈을 버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소득을 줄였을 때의 하지 못하는 일과 아쉬움이 생각났고, 차일피일 그만두는 시기를 미루게 됐던 것 같다. 


올해는 영화 준비와 그 외 해보고 싶었던 글쓰기에 시간을 더 투자하려 하고 있다. 물론 일하는 시간을 줄였을 뿐이지,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소득활동은 필요하다. 그리고 현재 균형이 만족스럽냐고 묻는다면, 아직도 모르겠다이다. 아직까지도 그 둘에서 아쉬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돈을 더 벌어 미래와 현재가 조금 더 안정적인 느낌을 받고 싶기도 하고, 일을 더 줄여 작품 활동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기도 하다. 이건 어쩌면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욕심인 것 같다. '하고 싶은 것'과 '생계'의 밸런스는 사실 한쪽의 완전한 해결 이외에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저 둘 간의 차이를 줄이는, 그래서 아쉬움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길_god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god의 곡 <길>의 가사는 현재 내가 고민하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떠한 길 위에 놓여있다. 그저 뚜벅뚜벅 목표를 향해 걸어가기도 하고, 잠시 멈추기도 한다. 갈림길을 만나 고민하기도 하고, 뒤돌아왔던 길을 돌아가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그 길의 끝이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한 발자국 앞의 길도 안개로 가득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쫓고 있는 꿈을 향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전혀 다른 방향인지, 우리는 지금 알 수 없다. 걷고 있는 이 길이 믿음과 설렘으로 가득할 때도 있지만, 조금의 시련을 겪게 되면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나기도 한다.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걸까. 이 길의 끝에서 나의 꿈이 결국 이루어질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그리고 결국 이 길에 서있는 게 맞는 일일까 하는 끊임없는 불안과 생각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처럼 알 수 없는 미래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은 기분 좋은 설렘과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불안감과 우울감에 빠져버리게 하기도 한다. 예술을 하다 보면 이런 감정의 널뛰기를 크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학교의 울타리를 막 벗어났을 때, 이러한 고민들로 인해 가장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었다. 해가 지나며 점점 조금씩 초연해지고는 있지만, 료타의 포스트잇의 글귀처럼 이따금 '인생이 꼬여버린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며, 걸어나가던 길에서 멈춰 '이제 그만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길>의 가사의 한 파트처럼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이 길이 맞는지 자신이 없다. 그래서 지금은 '길의 끝'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은 기대감보다 불안감이 크기 때문에, 그저 묵묵히 한 발자국씩만 나아가 보려 한다. 이 길이 내가 원했던 길이 아니었다 해도 이 길을 걸으며 느꼈던 감정과 사람, 추억은 계속 소중히 남아있을 테니까. 료타의 대답처럼 꿈을 이루는 것보다 꿈을 좇으며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일 수 있으니까.



심호흡(深呼吸)_하나레 구미 / <태풍이 지나가고> ost



꿈꾸던 미래가 어땠든 그래도 여기까지 걸어준 '어제의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놓을 수 없는 '미래의 나'를 위해 한 걸음, 또 한 걸음씩 나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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