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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PECT Mar 17. 2024

성공적인 DJ 데뷔

세계적인 DJ LEESEPCT

디제이 컨트롤러가 생기고 몇 달이 지났다.

집에서 "맥! 썸! 노이즈!"를 외치면서 뭐 때문에 유학을 왔는지 착각할 정도로 매일 열심히 연습했다.

그것도 방음이 잘되는 지하방 같은 곳이 아닌 한국으로 따지면 주상복합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캐나다 콘도에서 살았는데..

일주일에 2회는 기본으로 옆집의 방문을 받을 정도로 수많은 노이즈 컴플레인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국인 친구한테 많이 미안하다.)

당시 내가 살던 캐나다 콘도

어찌 되었던 다시 돌아오자면, 내가 좋아하는 곡도 어느덧 32기가 USB 하나가 꽉 찰 정도로 디깅(*Digging 채굴하다는 디제이용어)도 했고,


비트매칭(*각 다른 두 곡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는 용어)도 이 정도면 뭐 나쁘지 않은데?라는 자만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 이것 봐라~ 나 잘 치지?" 하면서 부모님 앞에서 작은 별을 치는 피아노 한 달 배운 5살짜리 꼬마 같았다.


그래도 그 당시 한창 뽐내고 싶었던 20대 초반의 방구석 DJ는 이제 사람들 앞에서 음악을 틀고 싶어 졌는지 혼자서는 흥이 안나는 단계까지 도달했고,

"그래! 이제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하자!" 나는 마치 생일파티에 친구들을 초대하는 어린아이같이 다짐을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그 당시 살던 콘도 뷰

클럽처럼 포스터도 만들고, 포틀럭 파티 형식으로 각자 먹고 마시고 싶은 음식과 술을 준비해서 이번주 금요일 우리 집으로 오라는 문자를 돌렸다.


문자를 다 보내고 난 다음 금요일 친구들 앞에서 버벅거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연습을 했고,

거짓말은 조금 보태자면 USB안에 1000곡이 넘는 노래를 들으면 누구 노래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듣고 연습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정도 열정이었다면 하버드 의대 조기 졸업 하고 어디 대학병원에서 유명한 의사 근무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조심스러운 의심도 하게 된다.


파티 당일이 되었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모이고 우리 집 아일랜드 테이블에는 피자, 치킨, 쌀국수, 각 나라의 술까지.. 2000년대 초반 부모님이 처음으로 데리고 가주셨던 아웃백, TGI 프라이데이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푸짐했으며, 다 마시면 간경화가 올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술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2평이 채 되지 않는 집에 15명의 친구들이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첫 곡을 시작했다. 둠칫 둠칫~ 비트가 시작되었고, 아직도 첫 곡으로 DAFT PUNK의 one more time을 틀었던 게 생생히 기억난다.


친구들은 "오~ 좀 하는데?"라는 느낌으로 어깨를 흔들어 주었고, 나는 기분이 좋아 짠! 을 외치고 마시면서 신나게 디제잉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들은 첫 곡 듣고 난 다음엔 술 마시고 노느냐 내 음악엔 관심이 없던 거 같은데 내 기분은 만 명 앞에서 디제잉하는 세계적인 DJ가 되어 있었다.

세계적인 디제이를 꿈꾸던 꼬맹이

2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다들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분위기는 캐나다에 있는 어느 유명 클럽보다도 무르익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다들 취해 있었지만 파티에 있는 모든 친구들이 문에 집중이 될 정도로 분위기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친구들은 이게 또 노이즈 컴플레인이라는 걸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문을 세게 두드렸고,

캐나다에선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그 두드림에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의 분노가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랫소리를 죽이고 친구들을 쳐다보면 조용하라는 검지를 입에 대는 제스처와 함께 조용히 문을 열였다.


언제나 컴플레인을 걸었던 옆집에 살던 우리 나이 또래 홍콩계 중국인이었다. 그 사람은 조금 화가 난 표정을 하고 너무 시끄러운 거 아니냐며, 자기 친구들과 집에서 다 같이 영화를 보고 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볼 수가 없다며 나에게 화를 냈다.


안절부절못하면서 미안하다고 하였지만, 음악을 안 틀겠다고는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만든 내 첫 데뷔 무대인데.. 포기를 못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생각을 하며, 잠시 뒤를 돌아보니, 친구들이 사 온 수많은 술병 사이에 중국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수정방이라는 고량주가 눈에 보였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중국인에게 그 짧은 시간에 "혹시 괜찮으면 너희도 친구들이랑 있으니까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놀래? 우리가 술을 대접할게!"라고

우리 집에서 같이 놀자는 초대의사를 물어보았고 그 중국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자기 집에 잠깐 다시 다녀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갔다.


우리는 더 이상 시끄러우면 안 될 것 같다며, 친구들과 아쉽지만 조용히 술이나 마시자고 DJ 컨트롤러를 정리를 하려고 코드를 빼려는 순간 문 두드리는 소리가 한번 더 쾅쾅쾅 들렸다.


우리는 그 중국인 친구가 화가 나서 콘도 시큐리티들을 부른 줄 알고 아까보다도 더 조용하게 문을 열었다.


그게 이게 무슨 일인가..?


그 중국인 친구는 자기 친구들이라며 5명의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해주었고, 오늘 클럽 못 가게 돼서 영화 보는 거였는데 초대해 줘서 고맙다고 한술 더 떠 크게 소리쳤다.


"MAKE SOME FXXKIN NOISE KOREA!!!!"


이런 게 지구촌인가? 이럴걸 정치에선 대통합이라고 했던가?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내가 마치 세계평화 사절단으로 온 한국대표가 된 느낌이었다.

그 홍콩친구 보러 놀러갔던 2017년도 홍콩

그렇게 나는 내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치렀고 한국인 유학생만 불렀던 내 파티는 세계적인 다문화 클럽 파티가 되었다.


그 홍콩 친구는 그 파티 이후 더 이상의 컴플레인이 없었고, 아직도 가끔 페이스북으로 그 홍콩 친구와 연락한다. 그때 너무 재밌었다고.. 나중에 꼭 한 번 더 그렇게 같이 놀자고..


잘 지내나? 그 친구 결혼 했다는 거 같은데... 난 아직 결혼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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