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짜치는 결말
그와 서로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 보며 각자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살펴보자,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한 것이 해석의 다양성을 불러일으킬 워딩이었나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도 그때 이성적 끌림이나 호감이라고 명명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친구 이상의 호감인 것 같은 상대에 대해 궁금함이 있었고 그래서 그 궁금함의 실체가 과연 나는 인간적 호기심인지, 이성으로서의 발전인지 알고 싶었다.
그렇기에 더욱 신중하게 표현을 했다. 상대도, 나도 둘 다 서로에 대해 확실한 이성적 호감, 관계발전에 대한 확신이 아닌 알아보고 싶고 궁금한 딱 그 정도의 감정임을 명확하게 대화로 나누었으며 그래서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천천히 알아가 보자고, 그러면서 그 마음이 이성과 친구 둘 중 어디로 기우는지를 살펴보고 확실해지면 솔직하게 말하자고 그렇게 정리했다.
이 대화를 나누고 3일 동안의 연락이 나는 너무 버거웠다. 처음 이틀은 나의 무의식 중에 형성된 상대의 감정적 반응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이 사람이 원하는 속도만큼 내가 따라가 줘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했다. 이 사람이 스리슬쩍 내뱉었던 답장 속도가 늦었다, 내가 산책 가자고 했을 때 반응이 별로 없었다 등등의 말들이 그날 내게 모두 박혀 나는 이 사람 앞에서 다시는 어떤 실수도, 책 잡힐 행동 또한 해서는 안된다는 강한 의식이 잡혀 버렸다. 나는 즐겁지도 않은데, 그의 답이 반갑지도 않은데 그의 텐션에 맞춰서 그가 원하는 온도를 가늠하며 답을 해주고 나에겐 버거운 속도로 겨우겨우 따라가고 있었다.
그래서 일상에서 들여지는 시간들로 필연적으로 답장의 간격이 조금이라도 늘어지면 나는 이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말을 할지 내내 불안해하며 어떤 말로 그 반응을 지연시켜야 하나, 소거할 수 있나 나도 모르게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나에게, 이 사람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인지가 정말 사실인지 무의식 중에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그에게 잠깐 만나자고 했고 같이 조금 걸으며 이 사람과의 대화가 내게 전혀 즐겁지 않음을, 이 사람과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음을, 이 사람과 보내는 시간과 나누는 모든 말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나는 그때 2주 정도 식사를 하지 못하고 겨우 흰 죽 반 그릇을 하루에 2번 나눠 먹으며 수액을 맞아 오른쪽 팔에는 피멍이 든 채로 그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나는 내가 지금 밥을 못 먹는 것에 대해서, 빙수를 먹고 싶어 하는 그 사람의 희망사항에 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눈치를 보고 양해를 구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내 팔에 피멍이 들어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는데, 내가 밥을 못 먹고 있는 걸 알면서도 빙수를 먹고 싶다고 하는 사람인데, 처음 들어간 카페에서 빙수가 없자 옆 카페를 가고, 내가 걸어가기에는 조금 먼 가게에 전화를 해서 빙수가 있는지 물어보게 하는 사람인데, 그러다 아무 데서도 빙수를 팔지 않자 결국 먹고 싶은 것이 생겼다며 다시 처음의 가게로 돌아가 내 앞에서 스무디를 원샷하듯 마시는 사람인데 그런 모든 모습이 이 사람이 나에게 정말 이성적인 궁금함이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음료를 정신없이 먹을 수 있는 건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신경 쓰여 아무것도 제대로 못할 것 같은데, 상대가 궁금해서 살피고 어색함과 긴장과 설렘의 중간을 오가며 어서 대화하고 싶을 것 같은데, 걸을 때나 카페에 들어와서나 거의 모든 대화를 내가 이끌었고 내가 질문을 던지고 침묵을 깨뜨리는 새로운 화제를 꺼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음료를 때려 넣듯 마시고 나에게 이 사람이 한 첫 질문은 내 아버지의 나이였다. 그게 날 정말 아득하게 했다.
내가 그만 연락하자고 이 사람에게 전화를 한 날 그는 나에게 혹시 자기가 이 날 실수한 게 있는지 물었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 말해줄 수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보다 내가 네가 아닌 가장 명확한 시발점에 대해 꺼내, 네 실수가 무엇이었고 그게 어째서 내게 잘못이며 상처인지 깨닫게 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너의 엄마도, 선생님도 아니니까. 네 감정의 돌봄의 의무가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가장 확실하게 끝내는데 이성적 호감이 없다는 것만큼 쉽고 확실한 건 없으니까.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그날 카페에서 내가 결제수단이 없어 그 사람이 대신 결제를 했고 나는 돈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커피 한 잔조차 얻어마실 이유는 우리 사이에 단 하나도 없으니까, 설사 우리가 무슨 사이였다고 해도 연인 사이도 아닌 상태에서 나는 커피 한 잔조차 빚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는 됐다고 하면서 그렇다고 완강하게, 확실하게 거절도 하지 않았다. 그날 집에 도착해서 나는 바로 송금을 했고 그 친구는 뭘 보내냐고, 괜찮다며 받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전화로 거절의사를 밝힌 다음 날 오전 그로부터 송금을 받았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그게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그리고 2주 뒤 밥을 먹자는 이 사람의 연락이 있었고 나는 이제는 정말이지 마지막 남은 인류애까지 잃어버릴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본인의 마음만 생각하는, 상대의 상황이나 마음을 헤아려보지 않는, 나에 대한 감정적 배려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짜치다는 은어가 아닌 경상도 방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