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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Sep 09. 2024

나는 다시 상처의 끝에 매달려 있다

무참히 흔들리며 아슬하게 붙잡으며 흘려보내기

그는 연애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연애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어질했다.

그건 내가 생각보다 깊게 그를 향한 내밀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걸 의미했다.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진실된 한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그 마음에 성실히 임하며 정말 소중하게

누군가를 향해 품은 감정을 대하기에, 그것만으로도 귀한 것이라 여기기에 나에게 이 상처는 생각보다 크고 오래갔다.


일련의 과정과 경험을 통과하며 더 이상 혼자만 향하는 사랑으로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나만이 상대를 이렇게 깊고도 순도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현실을 더 이상 아파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홀로 남아 내가 품은 감정의 깊이만큼 오래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며 회복의 시간을 오롯하게 견뎌야 하는 현실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확실히 존재했다.

그래서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같은 마음, 같은 시선, 같은 온도로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에게 아끼는 마음으로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향하는 사랑만큼 꼭 더해지는, 통하는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내가 품은 이 마음이 나에게서만 끝나는 것이 너무너무 아픈 것이었다.


상처받고 싶지 않기에,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사랑에 있어서만큼 순수하게, 지순하게 그 감정을 다루고 여기는지, 상대를 향해 나아가는지 스스로 잘 알기에 나는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 두려웠다.

끝을 알 수 없고 결말을 알 수 없는 길을 가봐야만 아는, 용기를 내봐야만 하는 길에서

상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뛰어넘어 너에게 가닿기 위해 걸음하는 그 과정은 생생한 것이니까.

내딛은 발걸음의 끝에 기쁨이 있을지, 고통이 있을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사랑의 운명이니까.

그 길을 걸었을 때 내가 낸 용기가 더 이상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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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아, 끝까지 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어떤 미련을 남기거나 후회를 반복하게 하는 게 싫어서, 시간이 지나 '어쩌면'이란 가능성을 내내 재고 있고 싶지 않아 나는 내 감정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상대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용기를 내고 어떤 결말이든 내 자리에서 내 몫의 감정을 감당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진실된 사람이라 그냥, 쉽게 내 안에 품은 감정을 '아니면 그만이지 뭐'와 같은 마음으로 다룰 수 없고 또 그래서 그만큼 상처가 깊고 회복이 충분히 필요한 사람이라 나는 늘 사랑을 시작하기 앞서 나를 오래 들여다본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각이 정말 사랑이 시작됨을 예견하는 것인지 내 안에 울린 그 신호를 아주 예민하게 살펴본다. 하지만 대체로 그 감각은 내가 느낀 첫 느낌이 맞고 그럼에도 나는 확실하게 그 마음을 살피고 따라가 본다. 그건 앞으로 아주 오래도록, 깊고 잔잔하게 누군가를 마음에 들여 한참을 어루만지게 될 거란 사실이니까. 또다시 그 지순한 마음을 품으며 무참히 흔들릴 거란 의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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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대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이, 내 안의 요동이

그 사람에 대한 인간적 호감인지 이성적 호감인지, 단순히 사람에 대한 궁금함과 호기심인지, 이성적 호감이라면 나는 왜 이 사람이 좋은지, 왜 자꾸 시선이 향하는지, 얼마만큼의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아주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묻고 답하며 분별한다.

나의 이 마음이 사랑하게 되는 길목에 있는 건지, 아니 이미 사랑의 길에 들어와 버린 건지,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마음인지, 얼마나 짙은 온도와 밀도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지, 점점 어쩔 수 없이 너에게로 시선과 마음이 향하는지 그런 것들을 아주 오래, 천천히 또 찬찬히 살펴본다. 내 안의 감정을 하나씩 명확하고 선명하게 분별하고 명명한다.


그래서 이번에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났을 때 나는 사랑을 시작하기 두렵다는 글을 쓰기도 했고 내가 정말 이 사람이 인간적으로 궁금한 건지, 이성적으로 끌리는 건지, 이성적 호감이나 끌림이라면 어떤 순간에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느끼는지 순간의 착각은 아닌지, 정말 내가 이 사람을 이성으로서 알아보고 가까워지고 싶은 건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이 마음을 계속 키워가도 좋을지 정말 나는 그러고 싶은지, 그 이후가 그려지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가는 중에 잠시 멈춰 섰던 순간도 있었고 그럼에도 다시 향하는 마음과 시선이 있었고 그러면서 나는 내가 이 사람을 정말 마음에서 품고 있다는 것을, 다시 그 찬란하고도 잔인한 사랑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 사람을 꽤 오래 잔잔하고 깊이 있게 좋아하게 될 거란 사실을 예감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보려 했고 천천히 다가가보려 했고 그와 알게 되는 지점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그런데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가까이 다가가며 나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한 그 모든 것이 다 끝났다. 10년을 넘게 제대로 연애도 하지 않았으면서 어째서 내게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연애를 시작했는지, 내가 그를 바라보는 어여쁜 마음을 그 또한 누군가를 향해 품고 흘려보내고 나아가 서로에게 향하며 기적과도 같은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 건지 그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나 아픔이었고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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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지금 참을 수 없이 무겁고 빠르게 무너져 내렸고

생각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충격에 정신없이 비틀거리며

무참히 흔들리는 중심을 단단하게 붙잡으려 애쓰고 있다.


이러고 싶지 않아서 그를 오래도록 알아봤고 확신할 수 있는 상황에 이 감정을 시작했는데

그 모든 노력이 가닿을 수 없는 환경과 상황이 존재했다.

그건 내 영역 밖의 일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무 아프다.

이 마음을 접는 것이 너무 힘겹다.

차라리 내가 아니라면 좋겠는데 시작도 하지 못한 채로 끝나는 것이 너무 큰 아쉬움이 되어 나를 짓누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을 접어야 하는 것이 나은지, 내가 그에게 아니라서 이 감정을 지워내야 하는 것이 나은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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