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참히 흔들리며 아슬하게 붙잡으며 흘려보내기
그는 연애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연애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어질했다.
그건 내가 생각보다 깊게 그를 향한 내밀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걸 의미했다.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진실된 한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그 마음에 성실히 임하며 정말 소중하게
누군가를 향해 품은 감정을 대하기에, 그것만으로도 귀한 것이라 여기기에 나에게 이 상처는 생각보다 크고 오래갔다.
일련의 과정과 경험을 통과하며 더 이상 혼자만 향하는 사랑으로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나만이 상대를 이렇게 깊고도 순도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현실을 더 이상 아파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홀로 남아 내가 품은 감정의 깊이만큼 오래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며 회복의 시간을 오롯하게 견뎌야 하는 현실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확실히 존재했다.
그래서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같은 마음, 같은 시선, 같은 온도로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에게 아끼는 마음으로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향하는 사랑만큼 꼭 더해지는, 통하는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내가 품은 이 마음이 나에게서만 끝나는 것이 너무너무 아픈 것이었다.
상처받고 싶지 않기에,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사랑에 있어서만큼 순수하게, 지순하게 그 감정을 다루고 여기는지, 상대를 향해 나아가는지 스스로 잘 알기에 나는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 두려웠다.
끝을 알 수 없고 결말을 알 수 없는 길을 가봐야만 아는, 용기를 내봐야만 하는 길에서
상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뛰어넘어 너에게 가닿기 위해 걸음하는 그 과정은 생생한 것이니까.
내딛은 발걸음의 끝에 기쁨이 있을지, 고통이 있을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사랑의 운명이니까.
그 길을 걸었을 때 내가 낸 용기가 더 이상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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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아, 끝까지 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어떤 미련을 남기거나 후회를 반복하게 하는 게 싫어서, 시간이 지나 '어쩌면'이란 가능성을 내내 재고 있고 싶지 않아 나는 내 감정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상대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용기를 내고 어떤 결말이든 내 자리에서 내 몫의 감정을 감당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진실된 사람이라 그냥, 쉽게 내 안에 품은 감정을 '아니면 그만이지 뭐'와 같은 마음으로 다룰 수 없고 또 그래서 그만큼 상처가 깊고 회복이 충분히 필요한 사람이라 나는 늘 사랑을 시작하기 앞서 나를 오래 들여다본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각이 정말 사랑이 시작됨을 예견하는 것인지 내 안에 울린 그 신호를 아주 예민하게 살펴본다. 하지만 대체로 그 감각은 내가 느낀 첫 느낌이 맞고 그럼에도 나는 확실하게 그 마음을 살피고 따라가 본다. 그건 앞으로 아주 오래도록, 깊고 잔잔하게 누군가를 마음에 들여 한참을 어루만지게 될 거란 사실이니까. 또다시 그 지순한 마음을 품으며 무참히 흔들릴 거란 의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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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대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이, 내 안의 요동이
그 사람에 대한 인간적 호감인지 이성적 호감인지, 단순히 사람에 대한 궁금함과 호기심인지, 이성적 호감이라면 나는 왜 이 사람이 좋은지, 왜 자꾸 시선이 향하는지, 얼마만큼의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아주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묻고 답하며 분별한다.
나의 이 마음이 사랑하게 되는 길목에 있는 건지, 아니 이미 사랑의 길에 들어와 버린 건지,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마음인지, 얼마나 짙은 온도와 밀도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지, 점점 어쩔 수 없이 너에게로 시선과 마음이 향하는지 그런 것들을 아주 오래, 천천히 또 찬찬히 살펴본다. 내 안의 감정을 하나씩 명확하고 선명하게 분별하고 명명한다.
그래서 이번에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났을 때 나는 사랑을 시작하기 두렵다는 글을 쓰기도 했고 내가 정말 이 사람이 인간적으로 궁금한 건지, 이성적으로 끌리는 건지, 이성적 호감이나 끌림이라면 어떤 순간에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느끼는지 순간의 착각은 아닌지, 정말 내가 이 사람을 이성으로서 알아보고 가까워지고 싶은 건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이 마음을 계속 키워가도 좋을지 정말 나는 그러고 싶은지, 그 이후가 그려지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가는 중에 잠시 멈춰 섰던 순간도 있었고 그럼에도 다시 향하는 마음과 시선이 있었고 그러면서 나는 내가 이 사람을 정말 마음에서 품고 있다는 것을, 다시 그 찬란하고도 잔인한 사랑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 사람을 꽤 오래 잔잔하고 깊이 있게 좋아하게 될 거란 사실을 예감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보려 했고 천천히 다가가보려 했고 그와 알게 되는 지점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그런데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가까이 다가가며 나의 마음을 보여주려고 한 그 모든 것이 다 끝났다. 10년을 넘게 제대로 연애도 하지 않았으면서 어째서 내게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연애를 시작했는지, 내가 그를 바라보는 어여쁜 마음을 그 또한 누군가를 향해 품고 흘려보내고 나아가 서로에게 향하며 기적과도 같은 사랑을 경험하고 있는 건지 그 모든 것이 내게는 너무나 아픔이었고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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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지금 참을 수 없이 무겁고 빠르게 무너져 내렸고
생각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충격에 정신없이 비틀거리며
무참히 흔들리는 중심을 단단하게 붙잡으려 애쓰고 있다.
이러고 싶지 않아서 그를 오래도록 알아봤고 확신할 수 있는 상황에 이 감정을 시작했는데
그 모든 노력이 가닿을 수 없는 환경과 상황이 존재했다.
그건 내 영역 밖의 일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무 아프다.
이 마음을 접는 것이 너무 힘겹다.
차라리 내가 아니라면 좋겠는데 시작도 하지 못한 채로 끝나는 것이 너무 큰 아쉬움이 되어 나를 짓누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을 접어야 하는 것이 나은지, 내가 그에게 아니라서 이 감정을 지워내야 하는 것이 나은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