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을 밝히는 유쾌한 청춘
수강생이 많지 않아 2인용 책상에 다들 혼자 앉아서 수업을 듣는다. 듣는다기보다는 참여를 한다. 수업 시간 내내 웃다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특히, 77세와 82세 두 분의 영어실력은 거의 원어민이다. 농담도 영어로 한다. 얼마나 유쾌한 지 두 분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웃다 보면 나중에는 입이 아플 지경이다.
웃고 떠드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소녀들이다. 나이를 몰랐을 때는 내 또래인 줄 알았다. 나이를 듣고 어찌나 놀랐던 지.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유머와 위트, 발랄한 모습이 명랑한 청춘들이다.
한두 마디 영어를 내뱉을 때마다 뒤따라오는 웃음이 통통 튄다. 강사가 먼저 시범을 보이면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한다. 10대 학생들처럼 풋풋하고 기운이 넘친다.
"누가 한번 해 보실래요"라고 강사가 말을 하면
제가 할게요가 아니라 "저기 썬이요" 라며 다른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면 지명을 받은 사람은 빼거나 안 하려고 하기보다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해야지"라며 유창하게 영어를 한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수업 시간 내내 웃는 거다.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상상초월 발랄함에 나까지 단풍잎처럼 물든다.
그들에게 영어 공부는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생겼다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강사도 수강생도 자유롭다. 수업은 그날 진도대로 하되, 굳이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부럽드만, 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오래 안 있었쓴 게.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50분 해 쓴 게 인제 브레이크 타임 해야제"
"얼른 와, 와서 사탕도 먹고, 요 옛날과자도 먹어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것이 진도에 지장을 주거나 수업의 흐름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심각할 것도 없고, 꼭 해야만 된다고 매달리지도 않는다. 잘하는 사람도 서투른 사람도 서로의 모습을 보며 그저 응원을 한다.
때로는 억양도, 발음도 엉망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삶의 많은 부분에서 완벽함을 추구해야 했던 과거를 건너온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느껴진다. 그들에게 이 시간은 그저 배우고 느끼는 그 자체가 기쁨이 된다.
70대, 8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젊은 청춘. 그들에게 영어는 그저 언어가 아니라, 또 다른 문을 열고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이다.
미카도 마르타도 전직이 교사다. 과거에 그들은 더 이상 배울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또 한 번의 청춘을 살고 있다. 이들에게 영어는 노년을 채우는 취미를 넘어, 삶을 향한 새로운 다짐이자 자유다.
할 수 있다는 자신을 위한 또 다른 기회, 그건 에너지이기도 하다.
발랄한 청춘의 명랑한 영어시간.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