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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서제미 Oct 28. 2024

발랄한 청춘의 명랑한 영어

문화원을 밝히는 유쾌한 청춘 

오늘은 책거리를 한다고 했제."


"옥수수 사 왔어"


"아니, 옥수수를 살라고 했는디 안 나왔더라고, 그래서 옛날과자랑 호박엿사탕 사 왔어"


미카할머니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봉지를 꺼낸다.  끊임없이 나온다.  종이컵,  요구르트, 호박엿, 옛날과자 1, 2, 3. 가방 안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흡사, 마술상자 같다.


"많이도 사 왔네"


수업시작 20분 전.  강의실에는 벌써 수강생 5명이 와 있다.  


내가 다니는 '영화로 배우는 영어회화반' 수강생 고정멤버는 총 8명이다.  10명에서 2명이 빠졌다. 연령대는 80대 초반 1명, 77세 1명, 60대 4명, 50대 후반 2명이다.  


수업은 매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시작하지만 학생들은 한두 명을 제외하고 20분 전부터 지정석에 앉아 있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니지만 한번 앉았던  자리는 그 누구도 침범하지 않는다.


수강생이 많지 않아 2인용 책상에 다들 혼자 앉아서 수업을 듣는다. 듣는다기보다는 참여를 한다. 수업 시간 내내 웃다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나는 앞에서 두 번째 자리다.  처음에는 후배랑 나란히 앉았다. 후배가 직장 때문에 다닐 수 없게 되자 그 자리는 내 지정석이 되었다.  내 뒤에 77세 미카,  맨 뒤는 82세 마르타 자리다. 영어수업시간에는 무조건 영어이름을 써야 한다.  


첫날 오자마자, 내 이름은 소피아가 되었다. 첫 시간에 바로 무장해제가 되어버렸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나는 그들 속에 스며들었다.  


강사도 수강생도 모두 자연스럽다. 수업은 물 흘러가듯 흘러간다.  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오랫동안 다닌 기존멤버다. 원년멤버도 있다.  나이를 생각하고 영어를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꾸준히 영어회화를 했던 사람들이라 다들 수준급이다. 


특히, 77세와 82세 두 분의 영어실력은 거의 원어민이다. 농담도 영어로 한다.  얼마나 유쾌한 지 두 분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웃다 보면 나중에는 입이 아플 지경이다.


웃고 떠드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소녀들이다.  나이를 몰랐을 때는 내 또래인 줄 알았다.  나이를 듣고 어찌나 놀랐던 지.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유머와 위트, 발랄한 모습이 명랑한 청춘들이다. 


한두 마디 영어를 내뱉을 때마다 뒤따라오는 웃음이 통통 튄다. 강사가 먼저 시범을 보이면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한다. 10대 학생들처럼 풋풋하고 기운이 넘친다. 


"누가 한번 해 보실래요"라고 강사가 말을 하면


제가 할게요가 아니라 "저기 썬이요" 라며 다른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면 지명을 받은 사람은 빼거나 안 하려고 하기보다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해야지"라며 유창하게 영어를 한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수업 시간 내내 웃는 거다.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상상초월 발랄함에 나까지 단풍잎처럼 물든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러나 강렬하다


그들에게 영어 공부는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생겼다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강사도 수강생도 자유롭다. 수업은 그날 진도대로 하되, 굳이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수업 내용 중에 조금이라도 연관된 내용이 나오면 바로 옆길로 샌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뜬금없이  "오메 배우 000가 죽어버렸드만"


"그래, 그래, 너무 아까워.  나보다 어린디" 


"그래도 나는 부럽드만, 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오래 안 있었쓴 게.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50분 해 쓴 게 인제 브레이크 타임 해야제"


"얼른 와, 와서 사탕도 먹고, 요 옛날과자도 먹어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것이 진도에 지장을 주거나 수업의 흐름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심각할 것도 없고, 꼭 해야만 된다고 매달리지도 않는다. 잘하는 사람도 서투른 사람도 서로의 모습을 보며 그저 응원을 한다.


때로는 억양도, 발음도 엉망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삶의 많은 부분에서 완벽함을 추구해야 했던 과거를 건너온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느껴진다.  그들에게 이 시간은 그저 배우고 느끼는 그 자체가 기쁨이 된다.


70대, 8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젊은 청춘.  그들에게 영어는 그저 언어가 아니라, 또 다른 문을 열고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이다.


미카도 마르타도 전직이 교사다. 과거에 그들은 더 이상 배울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또 한 번의 청춘을 살고 있다.  이들에게 영어는 노년을 채우는 취미를 넘어, 삶을 향한 새로운 다짐이자 자유다. 


할 수 있다는 자신을 위한 또 다른 기회, 그건 에너지이기도 하다.


발랄한 청춘의 명랑한 영어시간.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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