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힘의 원천은 가족의 지지와 응원
삼십 대를 지나 막 마흔이 된 내가, 육십이 된 나를 보고 웃고 있다. 가지런한 단발머리를 귀뒤로 넘긴 서른아홉을 지나 마흔이 된, "마흔이라는 나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십 대 시절, 친구와 나는 마흔이 되면 이십 대의 갈증과 고통이 사라질 줄 알았다. 마흔이 되길 간절히 기다렸고,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마흔이 되자 삶은 더 깊어졌고, 짊어져야 할 무게는 더 무거워졌다. 뒤돌아보니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나에게는 40대였다. 무엇 하나 손에 잡힌 게 없었다. 늘 마음은 허공에 있었고, 발은 매번 허방에 빠졌다.
그 마음을 부여잡고 집단상담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강의를 했으며 직업상담을 했다. 늘 웃어야 했다. 그 시절 나의 페르소나는 긍정과 웃음이었다. 웃으니 웃을 힘이 생겼고, 위로와 지지를 하다 보니 그 위로와 지지가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때,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돌이켜보니, 그때 내 곁에 있었던 건 가족과 글, 일이었다. 초등학생인 아들과 딸이 있었고, 일주일에 평균 두 편이상 기고를 해야 할 매체가 있었다. 30대와 40대 그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기다리는 아이들과 쓸 수 있는 글이 있어 가능했다.
30대, 40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하면서 어떨 때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일까?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 시절이 이렇게 선명한 기억으로 나를 찾아오지 않았을 거다.
20년 전인 2004년 직장을 잃은 중년 남성들이 줄을 지어 찾아왔다. 그들은 오랜 세월 일터에서 쌓아온 경력과 성취를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낯선 불안감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때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나 재교육만이 아니었다. 진정한 힘은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가족의 지지였다.
그때는 가장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컸다. 실직을 가족에게 알리기조차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직이 자신만의 책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느낀 죄책감과 무력감은 커져만 갔다. 때로는 자책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은 "괜찮아요,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가족이었다.
직업상담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같은 실직을 하더라도 재기에 더 빨리 성공했던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그 뒤에는 가족이 있었다. 가족은 안정감의 원천이었다. 직장에서 자리를 잃었더라도,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여진 사람들. 그 믿음이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주고 있었다. "괜찮아, 다시 해보자"는 가족의 말 한마디가, 차가운 세상에서 흔들리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20년이 흐른 2024년, 우리 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AI와 자동화가 일자리를 대체하고 기술 혁신이 일상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일자리 형태도 크게 달라졌다. 프리랜서, 플랫폼 종사자들이 늘어났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언제든 실직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가족이 주는 지지와 사랑이다. 시대가 변하고 바뀌었다고 하지만, 실직을 경험한 이들에게 가장 큰 위로는 20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가족의 사랑인 것이다.
가족이란, 우리가 실패할 때마저 받아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존재다. 직장을 잃은 아픔을 같이 나누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봐 주는 가족의 존재는 그 어떤 불안도 이겨낼 수 있게 해 준다. 시간이 흘러 시대는 변했어도 가족의 지지와 사랑이 주는 힘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실직 후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도 따뜻한 가족의 손길일 것이다. 가족이 건네는 작은 위로와 응원은 다시 시작할 용기와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가족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믿음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가장 큰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 진실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실직 후 가족의 비난과 질시로 자살직전까지 갔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의 열렬한 응원으로 재기에 성공해 재취업을 하거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들을 무수히 봐 왔다.
그들 중에는 꿈을 찾아 한옥을 짓는 대목수가 된 사람도, 중소기업 대표가 되어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이도 있었다.
30대, 40대 썼던 글들을 20년이 지나 다시 읽을 때마다 그 시절 만났던 이들이 문득문득 궁금해진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때 내 글 속에 주인공이었던 그 들 중에는 지금은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잊어버렸지만 아마도 '인간극장'비슷한 것이었던 듯싶다. 그런 류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했다. 글 한편이 매체에 실리면 매번 방송국작가들에게 전화가 왔다. 출연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그때 맺었던 인연 중에 지금은 모 기관의 센터장이 된 이도 교수가 된 이도 있다. 여전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응원을 하는 귀한 인연으로 남아 있다.
20년 전, 인연을 맺었던 그들 중 20대는 40대가, 30대는 50대가, 50대는 70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시절 내 글 속에 주인공이었던 그들이 2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활기차게, 꾸준하게, 소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을 즐길 수 있길 소망한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