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연, 긴 흔적. 양창용 PD
살다 보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사람이 있다. 서로 소식을 주고받거나 자주 연락을 하지 않아도 마음 한 편에 늘 고마움으로 자리한 사람. 피천득의 글에서 "인연은 서로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지만, 마음에 남는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정이다"라고 했다.
지난 금요일 밤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핸드폰을 열었다. 전화가 와 있었다. 이름을 본 순간, 반가운 마음이 와락 들었다. 내가 아는 분이 맞는지 문자로 물었다.
"갑자기 잘 지내고 계시는지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라며 답이 왔다. 몇 마디 짧은 인사말이 오고 갔다. 걸어서 집으로 오는 내내 따뜻했다.
정확히 18년이 흘렀다. 이제야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글로 대신한다. 그는 양창용 PD다.
내가 양창용 PD를 만난 건 2006년이었다. 그와 인연은 방송 때문이었다. 만남이 길었던 것도 아니었다. 3일간이었나, 5일간이었나. 그조차도 희미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삶에 스며들어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따뜻함으로 남아 있다.
2006년은 나에게는 꿈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구직자들과 함께 했던 이야기들을 글로 쓰고 있었다. 글이 올라가면 어김없이 방송작가나 기자들에게 연락이 왔다. 글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거나 기사로 쓸 수 있는지 등.
나는 주로 매개역할을 했다. 내 글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방송에 출연할 수 있게 알아봐 주고 연락해 주는.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주인공으로 방송에 출연을 하면 안 되겠냐는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방방송도 아니고 전국방송이라 부담스럽기도 했고 방송에 출연할 만큼 절절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고사를 했다. 하지만 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계속 왔다. 이유를 들어보니, 글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아닌, 구직자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것이 궁금하다고 했다.
어떤 식으로 하냐고 물었다. 직장은 물론 집에서 생활하는 것도 촬영한다고 했다. 쉽게 하겠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망설이고 있자,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하는 일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인데 했으면 좋겠다는. 그렇게 성사가 된 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는. 그 외 비하인드는 나도 모르니.
그 프로그램이 'KBS 피플 세상 속으로'였다. 그때 나를 촬영하러 온 사람이 양창용 PD였다. 그는 KBS 인간극장 '맨발의 기봉이'를 촬영했던 PD였다. 그때 당시 맨발의 기봉이 인기는 대단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아, 인간극장에 나왔던 기봉이'라며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촬영은 며칠 동안 이어졌다. 정확히 며칠간이었는지 그건 잊어버렸다. 구직자들을 상담하는 모습, 프로그램 진행하는 장면을 비롯한 모든 과정이 시나리오 하나 없이 평상시 일하는 모습 그대로 진행이 되었다. 촬영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평소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물론 구직자들을 배려한 촬영이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이 끝나고 집에서 촬영하는 것이 남았다. 사무실과는 달리 집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양 PD는 그 조차도 나를 편하게 했다. 평소대로 하면 된다고 그 어떤 부담도 주지 않았다. 집에서 촬영 역시 카메라가 있을 뿐, 평상시처럼 했을 뿐이었다. 그 어떤 것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촬영을 마치고 나니 밤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날 아들방을 그에게 내주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간 세 명 중 한 명이다. 두 명은 딸 친구였으니. 거의 유일무이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18년 동안 왜 그에게 고마워하는지 이제 말하려고 한다. 아들방에서 잠을 자고 나온 그가 말했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촬영을 하다 보면 그 집의 기운이 느낌으로 오는데, 이 선생님은 남편도 아이들도 앞으로 아주 잘 되실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라고. 그 말이 사는 동안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모른다.
촬영하던 그때 당시, 나는 거의 여성가장이다시피 했다. 남편이 사고로 다리를 다쳐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 속에 있었고, 동업했던 사업 또한 최악인 상황이었다. 사는 동안 힘들 때마다 양 PD가 그 아침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18년이 지난 지금 남편도, 아이들도, 나도 잘 지내고 있으니 어쩌면 그의 말이 실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가 우리 집에서 했던 긍정의 말이 우리 집에 남아서 잘 되는 길로 이끌어 주었을 지도.
촬영 이후, 양 PD를 다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목포에서 근무하던 2023년 1월 2일 그에게 새해인사와 함께 커피쿠폰이 왔다. 17년 만에. 그는 여전히 음식과 사람을 찾아다니며 전국을 마구잡이로 다니는 중이라 했다.
두번째 안부는 24년 11월 8일이었다. 벌써 정년이 되었다니 놀랍다는 말과 함께 서로 짧은 안부를 주고받았다. 내가 살고 있는 근처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며.
2006년 그 짧은 인연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줄은 몰랐다. 그 이후 단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그 아침 그가 했던 말이 우리 가족에게는 희망처럼 살아 있었다.
이제야 그 고마움을 전한다. 비록 단 한번 뿐인 만남이었지만 그 여운은 오늘까지 훈훈하게 남아 우리 가족에게 긍정의 기운을 전해주고 있다고. 덕분에 잘 살고 있다고. 이제는 정년퇴직해서 내가 바라고 원했던 글을 마음껏 쓰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