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의 법칙을 피해가지 못하고 침몰하는 연예인을 보며 온종일 새벽인지 저녁인지 모를 어둠에서 서성이던 나는 불온한 위안을 받는다. 적극적인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기보다 ‘인생이란’ 하고 전지적 시점에 슬쩍 올라타서 씁쓸해하면서도 부를 일군 한 사람의 치부가 끝내 드러나는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역겨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돌을 맞는 사람에게 가서 돌 하나를 얹어주고 오지는 않는다는 자부심. 어딘지 미심쩍다.
스포트라이트는 양날의 검이다. 나의 잘난 면과 동시에 나의 못난 면까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해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에 위안을 삼으며 언젠가 환한 아침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잔인한 말이지만, 새벽녘 어둠이 오히려 모든 것을 가려 정체된 듯하지만 안전하고 평온할 수 있다.
빛이 내리쬐기 시작하면 어려운 시절에도 꿈을 지켜내며 순도 높은 삶을 살았던 이들은 투명하게 빛을 반사해 광채를 뿜어내겠지만, 우리는 대체로 힘들 때 엉뚱하고 기이하고 때로는 경악스럽기까지 한 만행과 기행을 펼치기도 하니까 햇살에 취해 ‘나는 원래 이렇게 빛나야 하는 사람이었어!’라고 생각하는 동안 과거의 그림자가 서서히 발목을 잡으려고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렇게 조용히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견과류 한 줌을 챙겨 먹으며 방귀를 내뿜어도 아무도 실망이네 아니네 하며 지탄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난 1년간 요요현상으로 다시 과체중이 되고 말았지만 자기관리 좀 하라고 잔소리하는 실체 모를 ‘대중’이 내게는 없어서 다행이다.
지난 커리어의 끝자락에 내게도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로 거하게 죗값을 치른 사건이 있긴 했다. 일생을 중소기업에서 보낸 나에게 조금 더 큰 회사에 다닐 기회가 왔지만, 공교롭게도 언젠가 내가 저지른 과오로 인해 저항(?)의 기미가 보였고, 나는 인과응보를 나 자신에 빗대어 생각해보는 잔인한 시간을 보낸 끝에 어쩌면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제안을 거절했다. 본가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내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고 말하며 엉엉 울었다. 질문의 답은 알고 있었다. 나는 꽤 잘못 살아왔으니까.
보름 가까이 술을 안 마시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잘 살고 싶어서다. 그런데 오랜만에 보는 얼굴과 푸짐한 안주가 있는 술상에서도 내가 술을 손에 대지 않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첫 회사에 다닐 때 돌연 술을 끊고 술자리에서 물을 마시기 시작한 이사님이 떠오른다. 술잔에 물을 채우며 연거푸 (술 대신) 담배를 피우시곤 했는데, 나 역시 그렇게 술 마시는 척 물을 마셔야 할까?
조금씩 헐거워지는 마음의 빗장을 감지하며 ‘우리가 이 정도 얘기도 할 수 있구나’ 싶은 순간들을 좋아했다. 다음날이면 ‘그 말은 하지 말걸’이라는 생각에 괴로웠을지라도 술자리 한 번이 관계의 지형도를 화학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게 아무래도 가장 큰 유혹이다. 어쩌면 나는 순전히 술집이라고 간판을 내건 곳에 가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혼술은 자신 있게 멈추었지만 나를 아직도 ‘술꾼’으로 알고 있는 이들과 만나는 게 두렵다. 결혼식, 비혼식 등 수많은 의례 중에 ‘절주식’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늘과 땅, 그리고 나를 아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멈추었다는 것을 공표하고 기념한다면 좋을 텐데. 그런데 절주식의 뒤풀이는 도대체 어떻게 치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