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카페에서 주문을 할 때 맛을 물어오면 “산미 없는 걸로 주세요”가 고정 멘트였던 한 시기가 있았다. 방배동 모처에서 어설픈 손길로 도징을 배우고 원두 콩의 종류를 알아보던, 결국 중도하차하고 만 바리스타 수업을 들을 때도 생각지 못한 변화다.
가장 근접한 사건으로는 한동안 구운 마늘을 먹다 어느 순간 생마늘의 아릿함이 좋아진 일인데 지금도 정확히 언제부터 ‘나는 생마늘이 좋아’라고 말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커피의 산미도 마찬가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산미의 ‘킥’이 좋아졌다. 산미가 있는 커피는 고분고분 흘러들어가지 않고, 입안에서 한 번쯤 킥을 준다. 스타벅스에서 산미타령을 하면 블론드를 추천해 주는데 스벅 블론드의 킥은 그냥 물에 젖은 매생이 한줌으로 뺨을 맞는 정도의 미미함이 있다. 투썸플레이스의 경우 플로럴이던가, 화사한 맛을 선택하면 입안에서 작은 굿판이 벌어진 것처럼 꽤 즐거운 맛이 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개인카페에서 제대로 내려주는 커피만 할까.
신의 물방울 와인편이 아니라 커피편을 그릴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사실은 정말 단순하다. 산미가 있거나 산미가 없거나. 나의 미각은 아직 여기에 머물러 있으며 탑, 미들, 베이스를 나누거나 난데없이 ‘슬프게 탄 빵 냄새가 나요’ 같은 평을 생산해 내지도 못한다. 그러고 보면 물 취향은 아이시스8.0이라는 분명한 브랜드가 있는데, 미지근하게 마셔도 비리지 않아서 좋다는 이유에서다. 가끔 대화 중에 물 취향을 밝힐 때면 나름 섬세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이 있다. 반면에 커피 취향을 두고 킥이라는 둥 매생이로 뺨을 맞는다는 둥 하면 커피 제국이 된 이 땅에서 비웃음을 살 소지가 분명 있겠지만 나름 소신껏 표현하는 중이다.
저녁 약속을 앞두고 한두 시간 일찍 나와 산미가 있는 커피를 즐기자 싶어 카페에 들렀다. ‘나시미엔토’라는 커피를 한 잔 시키니 만원에 육박한다. 작은 쪽지에는 ‘파카스 품종’에 대한 설명이 깨알 만하게 적혀 있는데, 그 내용이 내가 하는 킥 타령보다 훨씬 고상하고 멋져 보인다. 그러니까 나는 이 카페의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겠지. 입맛을 다시면 입안 곳곳에서 아지랑이처럼 잔향이 피어오른다. 제법 멋진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생마늘을 좋아하고 산미도 조금 즐기는 사람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