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중고로 지갑을 사려고

by 써드

중고로 지갑을 사려고 당근에 들어갔다. 뭘 사든 보라색에 미친 나의 검색어는 지갑, 보라 지갑, 지갑 퍼플 등으로 변주를 거듭했고 마침내 이 중고물품의 세계에도 중산층의 붕괴가 여실히 드러난다는 점을 깨달았다. 10만원 이하에 옹기종기 모인 중저가 브랜드 위로 100만원, 때로는 1,000만원에 육박하는 명품 지갑들이 출몰하기 시작한다.


지난 봄에 구입한 은색 포터 가방은 팔길 잘했다. 영포티 아이템이라고 대대적으로 기사화하니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슬그머니 줄어드는 나도 참 속물이다. 그러나 딱 내 가방 같아서 구매한 프라다 크로스백을 생각하면 지금도 조금 속이 쓰리고 그립다. 올해는 재정적으로 힘든 한 해였으니, 이런 식으로 떠나간 물품들이 한둘이 아니다.


마샬 앰버튼 크림색 스피커도 속절없이 갔다. 블루투스로 연결해 재즈를 틀어놓고 손님을 초대하면 음악 좀 듣는 사람이라는 어필을 할 수 있었는데. 모서리가 둥글도 감촉이 보드라웠던 그 스피커는 수많은 스피커 중에서 내 손을 타고 나와 내 플레이리스트가 펼쳐지는 추억을 쌓았다. 다시 똑같은 모델의 제품을 구매한다고 해도 나는 그때 그 앰버튼이 그리울 거다. 내 스피커에는 아우라가 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올해의 가장 큰 비극은 까르띠에 트리니티링 스몰 반지를 보증서도 없이 염가에 팔아버린 일이다. 단순히 반지가 아니라 삶에 대한 나의 철학이 녹아 있다는 둥 지인 및 친구들에게 수많은 헛소리를 하고 다녔는데 결국 가난의 허리케인이 불더니 가볍게 반지를 휩쓸어가 버렸다. 나는 반지를 산 사람의 채팅방에 7개월 만인가 다시 톡을 보내기까지 했다. 한없이 없어 보이겠지만 절박했다.


“제가 다시 그 반지를 살 수는 없을까요?”

“저한테 좀 커서 언니한테 줬는데 힘들 것 같아요.”


거짓말. 이 사람이 괜히 밉다. 지난 연애를 마치고 공황에 빠져 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추운 날 백화점 오픈런까지 해 가며 구입한 반지인데, 마치 골룸이 된 것처럼 마음속이 한동안 복잡했다.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다.


자, 다시 돌아와서 지갑이다. 반년쯤 전에 강남대로에 있는 늬유늬유인지 뉴뉴인지 모를 복합 잡화센터에서 3,253개쯤 되어 보이는 물품 중 1,7000원을 주고 구매한 흐린 바다색 지갑을 쓰다가 고리가 헐거워져 지갑을 다시 사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나는 또 다시 새상품이지만 개봉한 탓에 가격을 내려서 파는 어느 길 잃은 명품을 득하려고 게걸스럽게 당근 어플의 목록을 살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명품을 소유할 만한 그릇이 아니고 처지가 아닌데 애써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생각에 돌연 검색을 멈추고 일반 쇼핑몰에서 검색하기를 반복, 이제는 황금시대를 지나 퇴역군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모 브랜드의 작은 지갑을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그러다 갑자기 욱하는 마음이 올라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명품 지갑을 검색하기를 반복했다.


결국 나는 어떤 지갑을 샀을까?


‘혹시 우리 더치페이를 해도 될까?‘라는 말을 하며 가방에서 꺼냈을 때 역설적이지 않을 지갑을 선택했다. 나는 풍자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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